[문학마당]오메! 머리가 흐커네(七旬에) / 수필 - 박용서
2022년 09월 19일(월) 19:24
쾌청한 아침이다.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준비한 음식들을 챙기며 부산스럽다. 칠순(七旬)을 맞는 남편이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차량 두 대에 나눠 싣고 아들 가족과 아내의 친구 세 명이 고향으로 향했다.

마을회관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와 계신 낯익은 분들이 내 손을 덥석 잡고 “오메! 머리가 흐커네. 벌써 그런 당가!” “머리 무겁게 뭔 음식이랑가?” 한마디씩 건네며 짐을 거들어 주었다. 반가움에 손을 꼭 잡고 덧없는 세월의 여운을 느끼고 교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때마침 마을 이장(나종화씨)은 회관에 설치된 옥외 방송을 통해 오늘 행사를 알리고 있었는데 확성기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마을은 물론이고 인근 들녘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귀농하여 꿈을 실현해보겠다는 낯선 젊은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몰라볼 정도로 노쇠해진 분들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시집온 꽃같이 아리따운 색시들은 거동이 불편한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음식상이 차려지자 이장은 “알고 오셨겠지만 강암 양반 셋째 아들이 고희를 맞아 동네 분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러 오셨습니다. 타향에 살던 분이 고향에 와서 이런 행사를 갖은 적은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하자 모두 박수로 환영하며 즐거워했다. 들판에서 늦게 오거나 이웃 마을에서도 소식 듣고 온 분도 계셨다. 어떤 사람은 떡이나 고기 등을 싸 가지고 가기도 했고 슬그머니 봉투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순수함에서 우러나온 마음의 표시라 느꼈지만 혹시라도 부담을 안겨 주기라도 한 것 같아 무겁기도 했다.

제일 인기 있는 음식은 홍어가 아닌가 싶다. 남은 음식과 주류 등은 미처 못 온 사람들이나 마을 분들이 나눠 드시도록 큰 형수님을 통해 회관에 남겨드렸다. 큰형수는 이 마을로 시집와서 이날까지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온갖 궂은일 도맡아 하신 우리 집안 장손 며느리다. 형수께서는 ‘시 아제 덕분에 내 위신이 섰다’고 하신다.

우리 마을 신촌리는 3개의 단위 마을(신기촌, 땅골, 신덕리)로 이뤄졌고 80여 호가 살았을 정도로 제법 컸다. 내가 마을 앞 반남초등학교 32회 졸업할 때만 해도 6학년이 2개 반이나 되었지만 이제는 전 학년 학생 수가 통틀어 겨우 10여 명에 불과하고 널따란 운동장은 잡초만 무성해 나간 집같이 초라한 모습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농 현상으로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연로하신 분들이 그나마 고향을 지켜가는 형편임을 참작한다면 오늘 참석한 4-50여 분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내 손을 잡아끌고 술잔을 내밀며 “여기 계신 노인들이 옛날 같으면 땅속에 들어가 있어야 할 나이여!”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지난날의 얘기들, 까맣게 잊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마무리하고 작별 인사하자 손을 흔들어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뭔가 아쉽고 서운함을 삭히기 힘들었다. 노환에 시달리며 외롭게 삶의 시간을 줄여가고 있는 저분들이 몇 년이나 더 사실 것인지. 곧 걷지도 못할 것만 같아 숙연해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산소에 들렀다. 반남 신촌리 고분(古墳)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묘역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불효자식이었음을 뉘우치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만 오늘은 아들 내외와 손자 녀석들이 넙죽 엎드려 절하는 모습과 부모님이 생전에 동고동락하며 같이 지낸 마을 사람들에게 조촐하게나마 식사 대접하고 가는 자식을 지하에서라도 흐뭇해하셨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광주에 도착해서는 이웃집 사람들을 초대하여 저녁 식사와 술 한 잔씩 나누며 뒤풀이를 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수고한 아내와 그의 친구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자식들이 바라는 해외여행을 마다하고 보낸 오늘이 잘한 듯싶기도 하다.

오후 늦은 시간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칠순!

오늘날까지 무슨 흔적을 남기고 여기까지 왔을까. 파란 많은 애환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새겨진 ‘흐컨 머리’를 만지작거려본다. 텅 빈 곳을 마주하며 허송세월의 부끄럼만 앞서지만 그래도 여생(餘生)에서나마 후회하지 않을 일이 무엇일까. 과거와 현실의 틈 사이에서 하얀 벽을 더듬어 본다. 팔순을 생각하는 노욕(老慾)에서 말이다.

<박용서 약력>
▲‘문학춘추’ 수필 등단
▲‘문학춘추’ 작가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무진주수필문학회 회장
▲저서 : ‘마음의 텃밭’, 공저 ‘木理로 가는 길’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박덕은 문학평론가>
박용서 님의 수필 ‘오메! 머리가 흐커네’에서의 서술자는 칠순을 맞아 고향 사람들에게 점심 대접하러 고향으로 내려간다. 마을회관에 모인 4-50여 명의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즐거워한다. 이장은 타향에 살던 분이 고향에 와서 식사 대접한 적이 없었다며 칭찬해 주었고, 감사의 마음을 표한 사람도 있었다. 시아제 덕분에 위신이 섰다며 형수는 고마워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부모님 산소, 거기서 과거를 떠올린다. 귀가하여, 이웃집 사람들과 뒤풀이를 한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무슨 흔적을 남기고 왔나 뒤돌아본다. 남은 여생에서 후회하지 않을 일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서술자의 시선으로 하루 행적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흐컨 머리’를 사색의 터널로 활용하고 있다. 제목 ‘오메! 머리가 흐커네’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의미와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의미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 생애가 몸살 앓으며 지나갔기에 머리가 하얘졌던 것일까. 힘겹게 걸어온 캄캄한 세월을 이제는 잊어버리라고 흰머리가 난 것일까. 아니면, 흰빛의 빛나는 하루를 이제부터는 이어가라고 흰머리가 난 것일까.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밝고 긍정적인 느낌이 가슴에 와닿는다. 서술자의 흰빛으로 빛나는 하루가 눈에 선하다. 어떤 계기로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반성하고, 깨닫고, 다시 일어서는 디딤돌이 수필의 특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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