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빛나는 사유의 미학

2022년 09월 30일(금) 00:11

이현 아동문학가

‘79원이요, 248원이요, 빼기를 72원이요….’

상점이나 시장에서 주판을 도구로 활용해 계산하던 시절엔 주산학원이 많았다.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교실 가득 주판알 굴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주산 급수가 올라갈수록 암산도 잘 할 수 있어 인기도 많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계산 왕을 뽑는 대회도 있었던 만큼이나, 빠르고 정확한 계산 능력은 귀하고도 멋진 능력이었다. 엄지와 검지의 움직임만으로 엄청난 숫자들을 더하고 나누며 계산해 내는 모습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따르릉~!”

무선 전화기를 처음 보던 날도 신비로움이었다. 학교에서 전화기 놀이 할 때도 종이 컵 두 개에 실을 이어, ‘여보세요?’ 대화를 하는 상황에서 선이 없는 전화기라니. 선도 없는 전화기에서 상대방의 말이 또렷이 들리는 게 너무도 신기해 전화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었다.

가족을 중심으로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도 특별히 신경 써 암기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2-7-9-4…’ 전화번호 수첩에 적혀있는 숫자를 따라 다이얼을 돌려 전화 몇 번 걸고 나면 저절로 머릿속에 저장돼 언제든 전화 할 수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가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어쩜 좋아….”

하지만, 전화기가 내 손 안에 들어오니 달라졌다. 연락처도 일정도 핸드폰에 저장해 놓으면 끝이 난다. 머릿속에 담아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이, 언제든 핸드폰만 열어 살피면 끝이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외출한 날에는 안절부절, 마음까지 불안하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할 일이라도 생기면 가슴만 답답하다. 어쩌다 전화하는 사이도 아니고, 수시로 전화하며 지내는 사이일수록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서로 연락하며 지냈으면서도 전화번호하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 보니, 뭔가를 하기 위해 마음 깊이 사유했던 것이 언제인가 싶었다. 계산은 계산기가 알아서 척척, 전화번호는 핸드폰에 저장만 해 놓으면 끝, 빨래도 밥도 버튼하나 누르면 끝나다 보니 조금만 신경 쓰이는 일에도 힘이 드는 것 같다. 쉽고도 편한 것에만 익숙해, 조금만 복잡해도 돌아서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사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입력되고 길들어진 또 하나의 로봇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나만의 색깔도 나만의 햇살도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왜 별들은 하늘위에 빛날까요?”

어느 해 가을, 길을 걷다 만난 스키터 데이비스의 노래 ‘The end of the world’ 가 그해 가을을 온통 물들였던 것처럼, 올 가을엔 좋아하는 노래도 들으며 감성 한 스푼씩 담았으면 좋겠다. 별별 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거듭해 별별 정보들을 모조리 주입해 놓은 특별히 성능 좋은 로봇이라 할지라도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우리의 마음까지는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안의 감성은 스스로 채워야만 담아질 수 있다. 산책도 하고, 마음에 맞는 책 한 권도 읽으며 달콤달콤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햇살과 나만의 색깔도 다시 찾아, 나를 위해 나아가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따스함이 되는 우리가 됐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