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 꼭 폐지해야 하나 본사 부회장 |
| 2022년 10월 12일(수)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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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를 폐지하면 그 업무는 어떻게 되는가. 그렇잖아도 조직이 비대한 보건복지부로 편입하는 안이 거론되는 모양이다.
그동안 여가부가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제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꼭 폐지 만이 정답일까.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여전히 제도적 성차별을 받고 있으며 출산과 육아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가사 불평등과 여성의 경력 단절은 여성가족부라는 부처가 존재해야 할 이유다. 여성의 사회적 성취를 가로막는 유리천장도 여전히 높다. 여가부 폐지는 성평등 정책의 후퇴라 볼 수 밖에 없다.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는 안도 얘기한 적 있다. 여성가족부 출범 목적처럼 남녀 누구도 젠더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한다면 꼭 있어야 할 부서 아닌가.
잘알다시피 여성가족부의 영문 이름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다. ‘성평등가족부’가 대외적인 공식 명칭이다. 다른 선진국들도 대부분 ‘성평등부’로 쓴다. 스웨덴은 2010년 고용부 산하 성평등 차관으로 통합했다. 우리나라는 1998년 2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시작으로 2001년 1월 ‘여성부’로 발전했다. 20여 년이 지나자 여성할당제와 남성복무제 등을 거론하며 남녀가 이미 평등해졌으므로 여성을 우대하거나 남성에게만 의무를 부여해선 안 된다는 논리로 폐지론이 거세졌다.
그러나 지금 왜 한국여성들은 왜 아이 낳기를 꺼리는가. 출산을 기점으로 여성의 육아 부담이 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사회 환경 때문이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생각한다면 여가부는 꼭 존재해야 한다. 지난해 우리날 남녀 임금 격차는 38.1%에 이른다. 남성이 100만 원 받을 때 여성은 61만9,000원을 받았다. 격차가 OECD 회원국 평균(12.8%)의 3배나 되고, 2020년(35.9%)보다도 벌어졌다. 성차별 문제의식이 확산되긴 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 전체 강력 범죄 피해자 2만2,476명 중 85.8%가 여성이다. 지난달 서울 지하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성평등 강화와 여성의 생존권을 호소했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여가부는 주기능인 청소년, 가족, 여성정책 및 여성의 권익증진에 관한 사무는 보건복지부로, 여성고용 관련 정책은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고 한다. 정부와 여당은 부서 폐지에도 여가부 고유의 기능이 약화되진 않을 거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양성평등이란 가치‘는 단순히 업무의 재배분으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독립부처 폐지에 따른 컨트롤타워 부재, 우리나라만 안고 있는 여성문제 등이 종합적으로 다뤄지기 어렵다.
국회에서 좀더 세밀하게 따져보기 바란다. 그간 제대로 기능을 다 해 왔는지도 살펴봐야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여당은 열린 자세로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민주당도 여성계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 지혜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사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대할 경우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어렵다.
최근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미 행정부가 한국과 세계의 성평등 및 여성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평등을 핵심 어젠다 중 하나로 내건 ‘가치동맹국’이 이 정부의 성평등 정책과 여가부 폐지를 주시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주의 힘의 진정한 척도는 여성의 힘과 지위의 정도”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여가부는 그동안 여성 정책 외에도 청소년 정책, 위기 청소년 보호·지원, 가족·다문화 정책, 성범죄 예방, 피해자 보호 등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남녀평등 문제는 최근 젠더 이슈로 더 복잡해졌다. 부처로서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더는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비록 ‘여성가족부’란 이름이 사라져도 고유의 기능은 재조정, 상황에 따라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여성정책은 성 주류화(모든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성평등 관점 반영) 전략을 적극 받아들이는 세계 흐름과도 거스르는 퇴행적인 행태다. 20여년간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여성의 인권과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해온 부처의 컨트롤타워가 없어지면 성평등 전담 기구로서 갖고 있던 독자적인 법률 제안권과 예산 편성권, 부처 간 정책 조율 기능이 사실상 사라진다. 여성 정책과 관련해 다른 부처의 협조를 얻는 데도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세계 160개 나라가 여성 전담 독립 부처 형태의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를 두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해마다 성별 임금 격차 등을 조사해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꼴찌다.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심의·의결기구는 국무회의다. 여가부 장관이 국무위원으로 참여해 성평등 정책의 조율·협업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성평등 정책은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국회다. 전 세계 여성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