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구월이 간다 / 시 - 김용
2022년 10월 17일(월) 19:22
구월이 간다
들판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가을은 고독해지기 시작한다

차가워지는 체온은
묵은 옷장을 다시 헤집어
오는 시간에 맞추고
나뭇잎이
또 다른 생을 채비하려 날린다

가끔은 센티해지려는가

빨라지는 사람들의 어수선한
발걸음들로 조급한 두 장 달력이
팔랑팔랑 거린다

뒤돌아 가지도 못하는
되돌아갈 수도 없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서

구월은 정녕
고적해지는 달인가 보다

<김용 약력>
▲광주문인협회 이사, 전남문인협회, 시인협회 이사
▲국제PEN 광주지회 이사, 나주문인협회 전 회장
▲나주문화예술상 수상
▲저서: ‘초보농부의 개론’(시), ‘영산강의 비상’(수필), ‘영산강을 색칠하다’(인생록)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김용 님의 시 ‘구월이 간다’에서의 시적 화자는 구월을 고독한 달, 고적해지는 달로 해석하고 있다. 봄의 이면지裏面紙 같은 구월은 쓸쓸함의 시작이다. 반쯤 남은 생기도 이제 이울어져야 한다. 바람은 서둘러 찬 서리를 이고 올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런 구월의 떠남을 시적 화자는 ‘나뭇잎이/ 또 다른 생을 채비하려 날린다’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생은 봄날의 환희 같은 날이 아니다. 닳아진 신발의 뒤축처럼 해지고 낡은 시간에 익숙해져야 하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들판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체온은 묵은 옷장 헤집어 오는 시간에 맞추고, 어수선한 발걸음들로 달력은 팔랑거린다. 구월이 가면 적당히 해지고 적당히 낡은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 문득 구월이 가지 않도록 구월을 붙잡고 싶어진다. 영영 고독에 빠질 것 같아 구월의 발목이라도 붙들고 싶다. 아픔 많은 슬픔의 가을을 끙끙 앓을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시적 화자는 ‘뒤돌아가지도 못하는/ 되돌아갈 수도 없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맞다. 구월 앞에서 우리는 어찌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영영 고독하고 고적해져야 한다. 그 느낌과 함께 독자도 갑자기 센티해진다. 보편적인 해석과는 달리, 낯설게 하기를 통해 구월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미지 구현을 통해 구월의 세계를 고즈넉이 바라볼 수 있게 해놓았다. 사색의 깊이를 맛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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