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 빈집 / 시 - 강태산 |
| 2022년 10월 17일(월) 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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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피 끓던 관음적 호기심에 젖무덤을 누리던 곳, 노동의 고통을 주저리주저리 청실홍실 청사초롱 엮어 위로받고 사랑을 했던 곳
그곳은 어둠이 쏠린 정지*에서 촛불로 여명을 밝힌 채 바람에 쓰러진 솔잎의 빛처럼 희미한 달빛으로 엄니의 한(恨)을 담아 자식의 부귀영화, 무병장수를 위해 기도하였고
그곳은 문설주*의 고통을 꺼낼 새도 없이 초라하고 검게 그을린 채 등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아버지가 나의 청년을 위로하고 있었다
빈집의 낡은 기둥과 주춧돌 위로 쏟아져 내린 절정의 슬픈 파편의 환청을 정적(靜寂)으로 끌어모아서 향기 없이 무너진 지독한 외로움의 사념(思念)들까지 뜯겨나간 구들장의 불기둥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아카시아꽃이 보이는 마루에서 영원을 약속했던 공간을 빈집으로 두고 떠나야 했던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었다
엄니 촛불이
잿빛의 어둠을 끝냈다
문설주에 걸린 아버지 등허리가
빈집의 재생을 떨림으로 약속했다
맑은 햇살이 내린다
빈집에 사랑이 맺힌다
빈집을 채우는 사랑
*정지 : ‘부엌’의 방언
*문설주 :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하여 중방과 문지방 사이에 있는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
<강태산 약력>
▲문학박사
▲광주문인협회 부회장
▲윤동주 문학상 수상(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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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산 님의 시 ‘빈집’에서의 시적 화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고향집을 그려놓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집은 은유의 빈집이 되어 바람과 구름과 달과 별이 노독을 풀고 있다. 시의 시작이 멋지다. 은유의 빈집은 시의 끝부분에서 언급한 ‘빈집을 채우는 사랑’과 이어지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말문을 닫았을 빈집, 그 빈집에 온기가 도는 듯해 멋지다. 고향집 부엌에서 어머니는 새벽마다 자식들을 위해 기도했다. 어머니의 기도는 달이 기울어도 점점 차올라 간절했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희미한 달빛으로 엄니의 한(恨)을 담아 자식의 부귀영화, 무병장수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한다. 희미한 달빛에 한을 담아 기도했을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한 달을 걷고 일 년을 걸어도 가난을 내려놓을 수 없어 얼마나 서러웠을까. 자식들을 위해 멍 자국 같은 하룻길을 오래오래 걸었을 것이다. 또 고향집은 ‘등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아버지가 나의 청년을 위로’했던 곳이다. 순간 마음이 울컥해진다. 따스한 슬픔에 덜미가 잡혀 마음이 아파 온다.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자신의 한 쪽 날개를 접으며 자식들을 위해 살았을 것이다. 굽이굽이 상처와 서러움을 지고 일터에서 돌아왔을 것이다. 그 아픔 많은 고향집으로 이제는 맑은 햇살이 내려 사랑이 맺혀 있다. 시적 화자의 사랑이 이 빈집을 채우고 있다. 한 가족사를 빈집의 이미지 구현을 통해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어,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