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문화살롱]‘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상) 완전한 삶의 여백…자유로운 영혼이 꿈꾸는 ‘求道의 길’

2022년 10월 25일(화) 20:02

나의 스승이신 이승권 교수와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도전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일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자기의 삶에 위안을 주는 것,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존적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이승권 교수는 스페인 산티아고 완주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프랑스 순례길을 조금 맛 본 그가 두 번째 도전으로 산티아고를 가려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로 떠오른 ‘산티아고 순례길’.

필자가 스승이신 이승권 교수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여정을 꾸준히 준비해온 그의 이야기를 광주매일신문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자연인과 더불어 중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티아고 순례길 들어가는 입구 표지. <인스타그램 제공>

그동안 지은 죄를 사면받고 싶은 마음? 자신의 체력과 인내를 검증하는 차원?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 보고 싶은 마음이 우선일 것이다.

12세기에 쓰인 산티아고 순례길(The Way of St. James) 안내서(Codex Calixtinus)에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Catedral Basilica de Santiago de Compostela)에 관한 사연이 담겨 있다. 예수 열두 제자의 한 분인 대야고보(Saint James the Great)의 포교 활동과 그의 시신이 이리아 플라비아(Iria Flavia) 인근 숲에 매장된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이 무덤은 814년 한 수도사(Pelagius)에 의해 발견됐고 그곳의 주교(Theodomirus)와 국왕(Alfonso II of Asturias and Galicia, 791-842)의 보호를 받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스페인 관광청 제공>

그런데 이 무덤의 주인공(Saint Iago)이 844년 클라비호(Clavijo) 전투에 나타나 이슬람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 기적 같은 사건을 계기로 산티아고는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스페인 국토회복 전쟁(Reconquista)의 구심점이 됐고 이슬람에 대항하기 위한 상징물로 성당(Alfonso VI of Castile, 1075) 건축이 추진됐다.

산티아고 가는 순례자들. <스페인 관광청 제공>

무덤이 발견된 이후에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산티아고는 공식 순례지로 지정됐는데, 대주교(Archbishop Diego Gelmirez, 1100-1140)의 노력과 1071년 예루살렘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당했던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89년 알렉산더 3세 교황은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를 성지로 선포했다. 대야고보 성인의 축일(7월25일)에 산티아고를 방문하는 순례자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칙령도 발표했다. 이로써 산티아고는 예루살렘, 로마에 이어 3대 가톨릭 성지로 지정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개척하는 데 주도적인 국가는 프랑스였다. 오늘날 순례자의 80% 정도가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을 통해서 산티아고 대성당을 방문한다.

순례가 본격화되면서 20㎞ 정도의 거리를 두고 도시가 발달했을 정도로 중세시대의 산티아고 순례는 전 유럽의 행사였다.

유럽대륙의 순례길은 프랑스를 통과해서 산티아고로 향한다. 그 결과 중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발달시켰다. 프랑스를 통과하는 순례길의 중심에는 4개의 도시가 있다.

파리(Paris)를 출발해 투르(Tours)를 통과하는 투르-파리 길(Camino de Tours-Paris, GR655), 베즐레(Vezelay)에서 출발하는 베즐레 길(Camino de Vezelay, GR654), 르퓌 앙 브레(Le Puy en Velay)에서 출발하는 르퓌 길(Camino de Le Puy, GR65), 그리고 남쪽 아를(Arles)에서 출발하는 아를 길(Camino de Arles) 등이다.

프랑스길(Camino Frances, French Way)은 파리(Paris), 베즐레(Vezelay), 르퓌(Le Puy)를 출발한 순례길이 만나는 피레네산맥 아래 생 장(S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한다.

생 장에서 출발한 프랑스 길은 피레네산맥을 넘어 중세 프랑스 영웅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롱스보(Roncevaux)를 거쳐 산티아고에 이르는 약 800㎞ 길이다. 아를(Arles)에서 출발한 순례길은 피레네산맥 남쪽의 송포르(Somport)를 넘어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프랑스 길과 합류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생 장서 출발 피레네 산맥에 펼쳐진 풍경. <인스타그램 제공>

선풍적 인기를 끌던 산티아고 순례길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의 방문과 198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1987년 유럽문화길(European Cultural Route) 지정, 1987년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출간, 1989년 세계 청소년의 날(World Youth Day) 개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재부상했다.

오늘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종교적 색채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종교적 아우라(Aura)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철·조선대 문화학과 초빙 교수>

직립보행 하는 인류(Homo Erectus)가 40일간의 걷기에서 오는 고통을 견디고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숭고하다. 오랜 걷기에서 오는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치유로 돌려 받는다. 고도 문명사회의 편리함보다 고도화된 정보사회의 소외감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존재에 대해 자문하게 만든다. 산업사회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환경, 건강, 웰빙 또는 웰다잉, 자연주의 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느린 삶(Slow life)을 추구하기도 한다.

절대 이성을 맹종하는 근대성에 환멸을 느낀 인류가 새로운 탈출구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산티아고 순례길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인간에게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따라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치유, 깨달음, 평화, 구원 등의 정신적 탐구 여행길이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성과 속의 경계(liminality)를 넘나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게 된다.

산티아고- 프렌치 웨이 지도.<구글 이미지>

TIP. 프렌치 웨이(French Way).

스페인의 프렌치 웨이(French Way)는 피레네 산맥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프렌치 웨이는 아라곤,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레온, 갈리시아 지역을 횡단하며 매년 15만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여행을 한다. 9세기에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이후로 진행돼 왔으며, 그의 상세한 설명이 담긴 12세기 출판물인 코덱스 칼릭스티누스(Codex Calixtinus) 덕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프렌치 웨이(French Way)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산의 첫 번째 여정이자 유럽 최초의 문화 여정이다. <스페인 관광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