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연 조선대 교수, ‘언어라는 세계’ 출간 우리가 모르는 한국어의 다양한 빛깔 시간·공간·침묵·비밀·이주민·세계 시각서 문화 결합한 언어 속 다채로운 관계 통찰 최명진 기자

2022년 11월 06일(일) 18:53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틀, 우리의 언어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진정한 소통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책이 발간됐다. 석주연 조선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펴낸 ‘언어라는 세계’(곰출판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 특히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말이다. 우리말을 굳이 더 깊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 더 이상 해명할 것 없어 보이는 한국어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필자는 언어야말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그 안에 숨겨진 고유한 면면을 관찰하고, 그것이 문화와 결합해 언어라는 세계가 품고 있는 다채로운 관계를 통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언어’라는 도구로 우리 스스로를 비추어볼 수 있도록 ‘시간의 언어(시제 체계나 시간에 대한 관념 차이)’, ‘공간의 언어(움직임, 방향, 시점, 관점에 따른 공간의 인식)’, ‘침묵의 언어(비언어적 의사소통이 불러오는 해석 차이)’, ‘비밀의 언어(은폐와 전달을 넘어 전승에 이르기까지)’, ‘이주민의 언어(문화와 언어의 만남)’, ‘세계의 언어(세계 속 한글의 가치와 사용의 역사)’ 등 다양한 시각에서 우리말을 조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언어가 생각을 결정한다’는 말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일례로 이 책에는 우리말의 쉬운 수사 구조 덕분에 우리나라 미취학 아동이 영어권 미취학 아동에 비해 연산 능력이 앞선다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로부터 우리말의 구조가 구체적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정말 인간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 책은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원주민 언어에는 ‘왼쪽’, ‘오른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이들은 오로지 ‘동서남북’의 방위만을 사용해 공간과 방향을 표현한다고 한다.

즉 우리라면 “그 컵을 왼쪽으로 조금만 옮겨줘”라고 표현할 것을, 이 원주민들은 “그 컵을 남남북쪽으로 옮겨줘”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 원주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으로 방위를 가리킬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문화와 언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훈련시켰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언어권 사람들보다 뛰어난 측면(이를테면 연산 능력, 다양한 색깔 표현력 등)이 있다면 우리 언어에 기본적으로 그와 관련된 개념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틀에 익숙한 사람은 의외로 자신이 가진 틀이 감추고 있는 측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런 사례를 통해 같은 사건을 두고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쓰는 언어에 의해 편향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오늘’의 우리말은 ‘어제’의 우리말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며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틀, 우리의 언어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저자 석주연은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와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조선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말과 소통에 관심이 있으며 한국어의 감춰진 세계를 드러내고 사람들과 나누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