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잊혀진 시대 / 박준수
2022년 11월 15일(화) 19:38
박준수 시인·경영학박사
우리는 시(詩)가 잊혀진 시대에 살고 있다. 시가 망각의 늪에 유폐된 지는 까마득히 오래된 일이다. 벌써 40년 전 쯤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 문화권력의 한 축으로 일컬어지는 창비사는 창비시선 표지에 ‘시가 잊혀진 시대를 위해...’라는 절절한 문구로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시는 여전히 가깝고도 먼 이방의 언어이다. 간혹 계절이 바뀔 즈음, 광주도심 안과병원 빌딩에 커다랗게 내걸리는 기발한 감성문구를 보면서 ‘아, 누가 이처럼 아름다운 표현을 생각해냈을까’라며 자석처럼 시의 마법에 끌리기도 하지만, 이내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린다. 바쁜 일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시의 효용이 상품성을 상실한 까닭일까.

서점들이 우리 주위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시는 이제 ‘시간때우기용’ 읽을거리도 되지 못한 신세가 되었다.

- 망각의 늪에 유폐된 지 오래 -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외국언론은 이러한 세태를 두고 ‘대답없는 세상에서의 시(Poetry in a world with no answers)’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처럼 시가 잊혀진 시대에도 역설적으로 시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문예지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책을 낼 때마다 매번 3~6명의 시인을 ‘신인상’이라는 타이틀로 배출한다. 우리 사회에 시인이 많은 것이 해가 될 일은 아니지만, 충분한 검증 없이 양산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인은 타이틀보다도 얼마나 좋은 작품을 쓰느냐에 따라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지금 광주 시문학은 그렇게 풍요롭지 못하다. 혹자는 수많은 시인과 시집출판 발행 숫자를 가지고 “광주는 시인들로 가득찬 도시”라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문학은 양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시대정신과 휴머니티를 얼마나 언어예술로 잘 직조해내느냐가 판단기준이다.

그런데 때때로 집에 배달되어 오는 개인시집이나 문예지들을 펼쳐보면 좀처럼 좋은 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좋은 시는 언어의 참신성과 이미지의 혁신성, 그리고 따뜻한 인간의 감성이나 혹은 날카로운 시대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부합하는 작품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진부한 서술, 설익은 시상이 난해하게 전개되는 시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보다는 도리어 머리가 어지러울 뿐이다.

이는 ‘시가 잊혀진 시대’가 아니라 도리어 ‘시가 시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와 관련, 지역의 한 원로시인은 따끔한 충고를 내놓았다. “(모 문학단체) 문예지에 실린 시를 보면 어처구니 없는 작품이 나온다는 겁니다. 아무나 차례로 돌아가면서 작품 주면 다 실어주니까 곤란한 시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회원은 무조건 순번제로 작품을 발표한다는 인식이 관행화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 원로시인의 죽비같은 충고 -
이 원로시인은 다음 달에 있을 광주문인협회 회장 선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보탰다. “문인협회라는 것은 개인 잡지사가 아니고 공공성을 띤 것입니다. 회장이 사유화하는, 자기 권한을 위해서 자기 자유자재로 만드는 것도 아니거든요. 사설 출판사처럼 문협이 운영이 되면 안 되지요.”

구순 노(老) 시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죽비처럼 가슴을 내려친다.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시인의 마음가짐도 일대 혁명이 필요하다.

문인협회 회장선거 때만 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시인이 아니라, 일년마다 연례 보고서를 내듯 찍어내는 시집이 아니라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소박한 시 한 줄을 밤새워 쓰는 이름없는 시인이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 작품의 옥석은 수준 높은 독자가 선별하게 된다. 한 마디로 시 정신의 회복이 절실하다. 시 정신이란 늘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시삼백 사무사(詩三百思無邪)’란 말처럼 사특함이 없이 맑은 영혼으로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자세가 요구된다.

따라서 연말 회장 선거를 계기로 광주문인협회가 새롭게 깨어나 시대정신을 가다듬고 대중과 호흡하는 진정한 문학단체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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