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79)

향을 피우던 소반 적적하고 응결된 먼지 가득한데

2022년 11월 22일(화) 19:11
經廢寺(경폐사) / 하곡 허봉
묵은 절도 해지나니 흥망을 알게 하고
보고 보아도 남은 스님 볼 수가 없는데
향상에 먼지 가득해 무당 벌래 불붙네.
古寺經年感廢興 重來不復見殘僧
고사경년감폐흥 중래불부견잔승
香盤寂寂凝塵滿 時有村坐點佛燈
향반적적응진만 시유촌좌점불등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많은 사찰이 세워졌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절은 대부분 이 무렵에 지어진 것이 많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병화를 입었다. 대부분 전소돼 흔적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민족의 커다란 비극이었던 6·25남침은 더 많은 병화를 입고 타버리는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절도 해 지나니 흥망을 느끼게 하네, 거듭 와 보아도 남아 있는 스님들은 다시 볼 수 없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향을 피우던 소반 적적하고 응결된 먼지 가득한데(經廢寺)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하곡(荷谷) 허봉(許 : 1551-1588)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 학자이다. 허난설헌의 오빠이자 허균의 형이며 유희춘의 문인으로 알려진다. 김효원 등과 동인의 선봉이 돼 서인들과 대립했으며, 1573년(선조 6) 사가독서하고, 1574년 이조좌랑, 1577년 교리, 1583년 창원부사를 역임했다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오래된 절도 해 지나니 흥망을 느끼게 하고 / 거듭 와 보아도 남아 있는 스님들은 다시 볼 수 없네 // 향을 피우던 소반 적적하고 응결된 먼지 가득한데 / 그때 시골 무당이 있어 불등에 불붙이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폐허가 된 절터를 지나면서’로 번역된다. 폐사(廢寺)가 어디 한 두 군데일 것인가 만은 옛 절이 있던 곳을 지나면 옛 생각에 마음은 오락가락 했으리라. 불교를 국교로 했던 고려시대의 흥망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을 것이며,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 시대도 불교는 흥행을 이어갔으니 그 더욱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시인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폐허가 된 절터를 지났을 것이다. 오래된 절도 해를 지내니 흥하고 망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거듭 와서 보아도 남아 있는 스님들은 다시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절 뿐만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라는 역사적인 흔적 앞에 다시 와서 보아도 시상의 주머니는 늘 텅 비고 말았을 것이다.

화자는 후정을 생각하는 시상은 허무라는 상흔(傷痕)이 가시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향을 피우던 상은 적적하고 응결된 먼지만 가득한데, 그때 시골 무당이 있어 불 등에 불을 붙인다고 했다. 폐허가 된 불교 중흥, 개경의 역사를 말해 주고나 있는 것처럼 이 절터도 그 때의 역사를 같이 했으리란 생각에 사로잡힌다. 등불을 켜는 무당의 행위가 그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으리라.

※한자와 어구

古寺: 오래된 절. 經年: 해가 지나다. 感廢興: 폐함과 흥함을 느끼게 한다. 重來: 거듭 와서 보다. 不復見: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殘僧: 남아 있는 스님. // 香盤: 향기의 소반. 寂寂: 적적하다. 凝塵滿: 응결된 먼지가 가득하다. 時有: 때로 ~이 있다. 村坐: 시골 무당이 앉아있다. 點佛燈: 불등을 켜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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