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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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이 넣어뒀던 두꺼운 옷을 꺼낼 때가 되었다. 아직은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옷차림을 고집해보지만 그게 얼마나 남았을까. 그 마저 허영인 것 같아 슬퍼진다. 올해의 끝이 가만가만 다가온다. 올핸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짧은 안부 엽서라도 써야겠다. 뒤처진 일인 줄 알지만 그거라도 해야 그나마 세월에 덜 미안할 것 같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가끔 나의 모습이 문득 보인다. 나의 모습과 마주할 때면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은행잎이 우수수 흩날리고 나뭇가지 끝에 잎사귀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이런 계절엔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 다가올 일보다는 지나 간 세월을 더 많이 추억하게 되는 계절이 나를 나의 내면 깊은 곳으로 이끈다.
어르신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그렇게 읊조리신다. “그래도 자네 나이가 좋은 때여”라고. 사실은 모든 나이가 다 좋은 때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세월이 밀쳐낸 나의 모습, 그것은 우리가 놓치지 않고 매순간 쌓아 만든 모습이다. 얼마 전 어느 매체와 인터뷰했던 내용이다. 나이가 좀 되어보니 이제 겨우 그림이 아주 조금 보인다고…. 그전엔 계속 그림을 준비하는 견습생에 불과했다고…. 물론 생이 끝날 즈음에도 여전히 그럴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생활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해도 이 짓(?)이 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쉽지 않다. 나는 그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의 어두운 시절과 나의 실패들을 사랑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것으로부터 내가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부터 내가 만들어졌고 거기서 지금의 내 그림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그림이 나를 위로해준다. 어둡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내가 지독히도 사랑하는 이유다.
<경기도 양평에서 화가 신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