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이화여대 교수, ‘격정의 문장들’ 발간

묻히고 잊힌 ‘절반’의 목소리를 되살리다

최명진 기자
2022년 11월 27일(일) 18:35
상언(上言)에서 독자 투고까지,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나선 책이 발간됐다.

김경미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가 펴낸 ‘격정의 문장들’(푸른역사刊)이다.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사실을 알게 돼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선 시대의 상언과 근대 계몽기의 여성 독자들이 쓴 독자투고를 톺아본 이 책 또한 그 같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국법을 어기고 편법을 행했다고 당당하면서도 간절하게 호소한 양반 부인의 상언, 시집을 향해 온몸을 다해 항변한 원정(原情)을 보면, 유교 가부장제 사회의 강요된 부덕(婦德)을 지켜야 했던 여성상과는 다른 모습을 본다.

여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대궐 앞에 엎드린 부인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여성 신문 독자, ‘첩이 부인만 못하리까, 슬프다 대한의 천첩된 자들아’라고 외친 첩들의 목소리 역시 묻혀 있고 잊혔던 존재들을 떠올리게 한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를 조선 후기와 근대 계몽기로 나눠 여성들의 글을 살핀 이 책은 인용된 글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새삼스럽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딸이 양반가 첩으로 들어가자 절개를 지키지 않았다고 잡혀가자 사회적 비난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관의 처벌을 받을 일은 아니라 항변한 조원서의 처가 올린 원정은 논리정연한 항변의 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단순한 발췌·인용이나 기계적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글에 얽힌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짚어 이해를 돕는 것은 적극적인 해석으로 여성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용된 글들이 흥미롭다. 권력에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할 말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신선하다. 19세기 후반 우의정을 지낸 심상규의 손자 심희순의 첩이라는 기생 출신 초월이 시국의 적폐를 고발하고 개선책을 제시한 상소문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다.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조선 시대 여성생활, 특히 여성의 글과 글쓰기에 관해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 책은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 여성들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열망과 혜안을 적실하게 드러내 우리의 눈과 귀를 틔워주는 값진 성취다.

/최명진 기자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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