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자의 '작은 학교이야기']학생 숫자 줄어드는 농산어촌의 작은학교

2022년 12월 02일(금) 08:38

고흥점암중앙중학교 교장

며칠 전 수학선생님으로부터 수업 초대를 받았다. 1학년, 일곱 명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다각형을 만드는 교구로 만들기를 하며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아이들은 실제로 다각형을 만들면서 정다각형의 개념과 다각형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깨우쳐 가고 있었다. 수학선생님은 필자를 포함해 초대받은 3명의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이 어떤 지점에서 주춤거리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개념을 터득하는지 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집단은 크건 작건 학습 속도에 편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제 각각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실제 물체를 연결하고 부수고 다시 조립하면서 더디더라도 스스로 개념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그게 우리 학교 교실 풍경이다.

이렇게 하는데 수학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우리 학교 아이들은 거의 수학을 좋아한다. 필자가 학창시절 수학에 흥미를 갖지 못했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참 신기한 노릇이다. 도시에선 부족한 학습을 보충하거나 선수학습을 하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 그러나 우리 학교 아이들은 학습을 위해 학원에 가지 않는다. 다만 방과 후 스스로 공부하는 동아리가 있다. 수학동아리를 비롯해 문학, 영화, 환경 동아리가 있다. 그 결과가 눈부시다. 3학년생인 강우는 과학고등학교에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2학년 유빈이는 전국 편지쓰기대회에서 중등부 대상을 받았다. 또 영화동아리는 각종 청소년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 고민이 생겼다. 점암초등학교의 23학년도 졸업생이 7명 뿐이란다. 그들이 우리 학교 신입생이 되는데 그 중 2명이 읍내 중학교로 갈거라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내년도 우리 학교 신입생은 불과 5명이란 이야기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의 필요성이 생긴다. 2022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학교는 미래사회에 자기주도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내는 곳으로 정의를 내린다. 누가 뭐래도 학교는 자기주도성, 창의성, 민주 시민성의 역량을 길러내는 곳이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학생 수는 적어도 10명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최소한 3-4개의 모둠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신입생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교생과 전교직원이 함께 수학여행길에 나섰다. 제주도에서 녹동으로 가는 배 선상에서 스탠딩 회의가 이뤄졌다. 때마침 고흥교육지원청은 읍 단위 과밀한 학급을 해소하고 고흥의 강점인 ‘작은 학교’로 분산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학교 설명회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학교로선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열린 설명회보다는 초등학교 두 군데를 대상으로 한 타겟 상담에 집중해보자고 했다. 우리 학교와 가까운 점암초등학교와 영남초등학교를 그 대상으로 하여 부모가 있는 시간, 야간일지라도 가정으로 찾아가 진로상담을 벌이자는 거였다.

도시에선 과밀학급이 문제이고 농산어촌에선 학생 수 부족이 문제다. 학교는 물론 마을의 소멸까지 위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은 서울경기지역과 연계한 농산어촌 유학 등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해결되기엔 역부족이다.

자연이든 사회든 생태계는 작은 것 하나 하나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낼 때 건강해진다. 도시와 농산어촌의 학령 인구 비대칭, 그 문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작은학교 살리기는 교육청과 학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하여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농산어촌 ‘일지라도’가 아니라, 농산어촌이기 ‘때문에’ 삶을 예쁘게 가꿔 갈 수 있고 자녀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농산어촌의 작은학교를 살리는 것은 절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