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의 기술과 품격 / 김일태 |
| 2022년 12월 05일(월) 2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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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이후 여야 정치권, 정부, 대통령실과 심지어 지식인과 종교인조차도 비속어, 저질 막말, 망언, 독설이 오가고 있다. 총리는 외신기자 회견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한국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시나”라는 질문을 받은 과정에서 통역 장애가 발생하여 참사 상황을 웃으며 농담조로 대응했던 것에 대해 해명했지만 이미 공감 능력은 바닥이다. 그리고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조차도 의원의 발언 가운데 홍보와 시민사회 두 수석이 메모장에 ‘웃기고 있네’ 라고 썼다가 지우는 일이 발생했다. 그들은 사적 대화라고 해명했지만 그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어떤 국민들도 공적 공간에서 나눈 그들의 대화가 개인적이라고 믿지 않으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으로 여긴다. 더 가관인 것은 이태원 참사를 책임지고 수습하는 주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누군들 폼 나게 책임지지 않겠나”라는 동떨어진 개탄스러운 발언을 쏟아냈다. 오죽했으면 소방노조에서 뻔뻔스런 장관을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특수본에 고발하고 사퇴할 것을 요구했고 야당도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실적으로 인간은 세상과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며 상대편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전략들에 날마다 직면한다. 더 자세히 보자면 인간을 상대하고 설득하는 관계의 기술, 소통과 공감을 얻는 언어의 기술, 사회나 조직에서 수직적 및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한 나눔과 섬김의 기술, 자신을 지키는 방어의 기술,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승리의 기술 등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적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필수 불가결한 기술은 언어의 기술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말(음성)과 글(문장)을 표현하는 기호를 통해서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여 상호 이해하는 의사소통체계이다. 말과 글은 상호 간에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여 이해를 구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술과 품격이 요구된다. 언어의 기술은 소통과 공감 능력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이고 언어의 품격은 말과 글을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질 수 있는 품위와 격식이 배어있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보여 준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내뱉은 말이나 조롱하는 글은 이미 언어의 기술과 품격을 상실하여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을 사라지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 여야 정치권이나 정부, 대통령실의 관계자들은 말과 글들이 상대방만을 반박하거나 비방하려는 속셈에서 악의적이거나 못마땅하고 모진 언어를 구사하지만 국민들은 위정자들이 자신감이 없고 상대에게 책임을 넘기려는 행위로 보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 아닌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으로 여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왕조 시대에서도 말과 글로 국가의 주인인 군주를 설득하여 공감을 얻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한비자(韓非子)에서 보여주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 한비(韓非)는 난언편(難言篇)에서 군주에게 “말하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고 말하기를 어렵게 하는 이유들을 열거하고 진실의 충언은 거슬리게 된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세난편(說難篇)에서 남의 마음을 내 마음에 공감시키는 설득이 어렵고 위험한 것이며 상대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군주의 약점을 건드리지 말라고 적고 있다. 하물며 민주공화국 국가에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을 설득하여 공감을 얻어내려는 말과 글은 한층 두렵고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권력의 힘으로 말하기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말하는 것도 함부로 하여 국민들의 존재와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현상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가 미국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붕괴를 우려하면서 로마공화국 멸망의 교훈에서 배운 “강력한 사람들(powerful people)이 정치규범을 무시할 경우 민주주의와 공화국 체제가 독선적인 행동을 막아내지 못하며 진영의 노선에 따르고 진영을 방어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출세지상주의(careerism)가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만든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이런 정치적 대립에서 국민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남 탓 타령만을 앵무새처럼 말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위정자들은 말과 글로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국민과의 소통의 시작은 설득을 통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