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문화살롱]이승권 교수가 추천하는 아를에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꿈처럼 짧은 인생…비우고, 채우며 또 다른 ‘나’를 찾다

2022년 12월 07일(수) 19:50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 전경. <나무위키 사진 제공>

이승권 교수와 함께 두 번째 산티아고 길 순례를 떠나본다. 이 길에 순례자들이 쌓아놓은 철학을 온몸에 땀과 함께 적시며 걷는다는 것은 내 안에서 나를 만나는 고행이 아닌 즐거움일 것이다. 순례길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문화강국 프랑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설레는 일이다.

독자들도 이 글과 함께 걷는 꿈을 꾸고 기대해 보자. 걷는 곳마다 수려한 자연이, 닿는 곳마다 행복이, 마지막에 이르러 감동이 숨 쉬는 이 길을….

이승권 교수가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추천하는 코스는 프랑스 순례길(French Way)이다.

프랑스 순례길은 생장에서 출발하지만 중간 기착지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아를 순례길(Arles Way)을 받아들인다. 프랑스 남서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아를 순례길은 송포르(Somport Pass)를 통해서 피레네산맥을 넘고 아라곤 길(Aragonese Way)을 따라 레이나까지 이어진다.

산티아고순례길-피레네 산맥-송포르트

프랑스 각지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레이나에서 합류해 산티아고까지 동행한다.

코덱스에서 아를 순례길로 명명된 길은 툴루즈(Toulouse)를 통과하는 프랑스 남부의 순례길로 비아 톨로사나(Via Tolosana)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 장거리 도보 여행길(GR653)과 겹치는 아를 순례길은 프랑스인의 걷기 사랑이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프랑스인의 감성과 어울리는 길이다. 게다가 아를 순례길은 산티아고와 반대 방향의 순례지인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와 대면하는 길이다.

서로 다른 순례지를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만나고 헤어지던 중심에 아를이 있었기 때문에 아를 순례길은 중세시대에 가장 붐비던 순례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남부에서 알비(Albi)를 중심으로 생겨난 카타리파(Catharisme)가 카타르 십자군에 의해 진압된 이후에 아를 순례길은 쇠퇴하게 된다.

아를 순례길은 빈센트(Vincent Van Gogh) 도시로 알려진 아를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생 기엠(St-Guilhem-le-Desert), 남부 운하(Canal du Midi), 툴르즈 등지를 거쳐 피레네 산맥의 국경도시 송포르 고개를 넘어 레이나까지 이어진다.

생 기엠 성당

레이나에서 롱스발(Roncesvalles)을 넘어온 프랑스 순례길과 합류하여 1천614㎞의 순례 여행을 이어간다.

코덱스 안내서 5권(Le Livre V du Codex Calixtinus)에서는 아를 주교를 지낸 세자르 성인(Saint Cesaire d’Arles), 생 질(Saint-Gilles du Gard) 수도원장을 지낸 질 성인(Saint Gilles), 중세 무훈시의 주인공 오랑주 기욤(Guillaume d’Orange), 초기 기독교 순교자 세르넹 성인(Saint-Sernin) 등을 만나보라고 추천한다.

코덱스가 추천한 각 지역의 성당에서 만날 수 있는 성인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성인들로 아를 순례길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제 아를 순례길을 따라가 보자.

반 고흐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를 카페.<프랑스관광청 제공>

아를 순례길의 출발지인 아를은 19세기 말 반 고흐(1888-1889)의 명화를 탄생시킨 고장으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BC 800년에 프랑스 원주민이 살았던 지역으로 론강과 지중해가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한 도시이다. 당시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알퐁스 도테(Alponse Daudet)의 아를의 여인(L’Arlesienne)은 비제(Georges Bizet)의 관현악곡으로 재해석되기도 했다.

로마제국 시대의 아를은 나르본 속주(Gallia Narbonensis)의 거점 도시로 시저(Julius Caesar) 편에서 많은 혜택을 누린 도시이다. 기원전 1세기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경기장과 극장, 지하회랑, 콘스탄티누스 목욕탕, 공동묘지, 성당 등의 로마유적이 오늘날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론강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삼각주는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다.

아를 순례길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시는 아를을 출발해 7일째 숙박하게 되는 생 기엠(Saint Guilhem Le Desert)이다. 이 도시는 사막(Desert)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인적이 드문 곳에 건설된 마을이다. 이곳에는 중세의 유명한 기사였던 기욤(Guillaume de Gellone)이 804년 설립한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다. 아를 순례길이 통과하는 겔론 수도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중세 유럽을 통일시킨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의 조카라고 알려진 기욤은 중세 무훈시(Chanson de Geste)의 소재가 됐다.

생 기엠을 떠난 아를 순례길은 남부운하를 따라 툴루즈로 들어간다.

툴루즈에서 순교자를 모신 성당(Basilica of St-Sernin)을 만나서 당시 기독교의 전파에 앞장선 순교자의 생을 생각하며 피레네산맥으로 발길을 옮긴다.

<최철·조선대 문화학과 초빙 교수>

가뿐 숨을 몰아쉬며 송포르 고개를 넘어간 아를 순례길은 아라곤 순례길을 따라 레이나까지 동행하며 순례길의 사명을 다한다. 드디어 프랑스에서 출발한 4개의 순례길이 하나의 순례길로 통합되고 산티아고로의 순례 여행이 계속된다.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낯선 풍경을 만나게 되는 순례자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고 다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역사와 문화, 기품을 간직한 아를 순례길에 놓인 도시들은 우리에게 이 땅을 걷고 읽을 수 있는 풍부한 인생의 참맛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승권 교수의 놀이터였던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정취와 함께한 아를 순례길을 향한 소망을 가진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