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12월 / 시 - 윤영훈

2022년 12월 12일(월) 18:41

새해의 소망은 아직도 이루지 못한 채
지는 노을을 보며 서성거리고 있는데
벽 위의 달력은 이별의 눈짓을 보내고 있다.

아, 차가운 바람은
자꾸만 어디론가 가자고 떠미는데
지친 몸은 바위되어 움직이지 않고
빛바랜 기억들만이 폭설로 쏟아지며
주름진 눈을 더욱 짓무르게 하는구나

그리움은 가슴에서 낙엽처럼 서걱거리고
장밋빛 꿈은 서서히 꺼져가는 불꽃으로
연기만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다.

<윤영훈 약력>
▲‘월간문학’ 동시, ‘창조문학’ 시 당선
▲전남시인협회 회장, 광주 전남아동문학인회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문학교류위원회 위원
▲시집 : ‘사랑하는 그대에게’, ‘별을 잃어버린 그대에게’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윤영훈 님의 시 ‘12월’에서의 시적 화자는 달력이 이별의 눈짓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서성이고 있다. 십이월은 계절의 모든 날들을 빠르게 소진시키고 영하의 시간만 남겨 두고 있다. 최저 임금 같은 영하의 기온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기에는 턱없이 춥다. 꿈꾸었던 소망은 아직도 이루지 못해 연체된 이자처럼 발목을 붙드는데 ‘달력은 이별의 눈짓을 보내고 있’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밤은 진저리치듯 길어만 가고 추위는 차갑게 쌓여 간다. 시적 화자는 그런 마음을 ‘빛바랜 기억들만이 폭설로 쏟아지며/ 주름진 눈을 더욱 짓무르게 하는구나’라고 말하고 있다. 도란도란 얘기하듯 흰 눈이 내리면 좋으련만 폭설처럼 쏟아지는 빛바랜 기억들 때문에 아프다. 찬바람은 자꾸만 어디론가 가자고 떠밀고 지친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바스락바스락 긴 밤을 밟고 가는 어둠은 짙어져 가고 그리움은 서걱거리는데 봄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곱씹고 또 곱씹어도 쓸쓸한 겨울 풍경만 사방에 깔리고 있다. 그리움도 꿈도 숨죽인 겨울은 적막하여 메마른 바람만 매섭게 불어오고 있다. 12월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쓸쓸한 심경이 이미지로 잘 그려져 있다. 시적 형상화 속에 담겨져 흐르는 미묘한 감성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