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의 민낯 보여준 임인년 / 김선기 |
| 2022년 12월 29일(목) 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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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39층 건물 외벽이 무너져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시작으로 대형 산불과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 물류센터 화재,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재난이 끊이질 않았다. 이러한 사고들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것이었으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인명 피해를 키운 것이다.
가까이는 지난 여름이다. 80년 만의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수도권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반지하 방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고립돼 사망했다. 이때 폭우로 희생한 사람들은 대부분 발달장애인이거나 기초 생활 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어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또 9월에는 태풍 힌남노 영향을 받은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8명이 죽어 나갔다. 좁아진 하천에서 범람한 물이 지하 주차장을 덮친 게다. 정부와 여당은 부랴부랴‘신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대한 차수벽 설치를 의무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사후약방문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도 그렇다. 이번 참사는 누가 뭐래도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다. 지금까지 있었던 핼러윈 축제를 반추했다면 참사 당일인 10월29일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란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살려달라’는 신고가 들어왔는데도 위험 경보를 울리지 못했다. 행안부와 서울시 용산구 역시 각각 재난 문자 발송 권한이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도 그저 허울에 불과했다.
결국 참사 발생 1시간 41분이 지나서야 첫 문자가 발송됐고, 그 아수라장에서 159명이 죽는 동안 정녕 국가는 없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이때 쓰는 모양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택했다. ‘논어’에 나온 말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과이불개’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특히 ‘세종실록’에는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이 잘못해서 후회한다는 기록만 10여 차례 이상 나온다. 세종은 후회에 그치지 않고 반성을 통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세종이 고집과 소신이 없어서, 아니면 리더 십이 부족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려 했을까.
이기려면 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 잘못을 고치거나 처벌받기는커녕, 인정하지도 않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노해야 하는가?
과이불개, 올해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를 어쩌면 이렇게 적확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정치권은 여 야 가릴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네 탓’이라며 고성과 삿대질로 우격다짐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일단 우기고 보는 것이다. 늘 그런 식이었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대학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과이불개’ 외에도 욕개미창(欲蓋彌彰), 누란지위(累卵之危), 문과수비(文過遂非)도 있다.
결국 올해의 사자성어를 종합하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숨기려고만 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그런 정부를 따끔하게 비판하지 못하는 지식인에 대한 자성을 담고 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다 같이 되새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