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마스쿠스(Homo Maskus)’의 도전 / 박남기

2023년 01월 05일(목) 19:21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10여년 전, 모 의대 교수 대상 교수법 강연 중에 한 노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수업 중에 검은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한소리 하고 싶은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시에는 마스크 착용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상황이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 모자 벗기기 위한 넛지(nudge. 넌지시) 기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자 마스크 착용의 답답함과 호흡곤란, 신체발달 및 피부질환,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등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학생들이 답답해한다며 학부모단체와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언어 습득과 사회성 발달에 장애가 된다는 우려도 컸다. 학생들도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신나게 뛰어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바뀔 것이라고 하니 교사와 학부모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데, 의무가 아니어도 마스크를 쓰겠다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아 새로운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심지어 체육과 급식시간에도 마스크를 쓰는 학생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마스크 착용이 장기화되면서 학생들은 마스크 안으로 숨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만 아니라 일부 일반인들도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그리고 마스크 착용을 선호하는 ‘호모 마스쿠스’로 재빨리 진화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로 가린 자신의 얼굴에 더 친숙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 모습에 더 만족하게 되었다. 마스크를 벗는 것은 민낯(생얼)을 드러내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났다. 마스크 착용 의무기간 동안 급감했던 립스틱 판매가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해제와 동시에 다시 급등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처럼 색조화장이라는 마스크가 다시 필요해진 것이다.

자신이나 상대를 바라볼 때 마스크를 낀 얼굴이 실제 얼굴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이는 영장류가 가지고 있는 뇌의 ‘얼굴 세포’와 관련이 있다. 얼굴 세포 덕에 우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구별해 낼 수 있다. 얼굴 인식 세포는 마스크로 가려져 식별이 어려운 코와 입 부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보다는 tv 등에서 마주해왔던 완벽한 이미지를 자동으로 대입”하여 상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상대가 마스크를 벗으면 상상한 얼굴과 실제 모습에 차이가 생겨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등장한 용어가 ‘마기꾼(마스크+사기꾼)이다. 내가 상대의 마스크 벗은 얼굴에 실망하듯 상대도 내 마스크 벗은 모습에 대해 실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마스크 벗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마스크는 가면처럼 우리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가면을 쓰면, 오히려 그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가면무도회에서 가면을 쓰는 이유는 윤리적 가면, 직위의 가면 등등 다양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행동하기 위함이다. 강제로 착용했던 마스크도 가면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마스크 착용 덕에 착하고 열정적인 학생의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교사의 수업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스크를 벗으면 다시 예전의 착한 학생 가면을 써야만 하는데, 이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소통을 시도하는 교사와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장 마스크를 벗기고 싶겠지만, 소통의 대상이 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교사와 학부모 또한 자신이 소통의 대상인 상황에서는 허용된다면 마스크를 쓰고 싶을 것이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강제로 벗기려 하기보다는 학생들 개개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배려해야 한다. 심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학생들은 혹시나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필요한 수준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의사들에 따르면 어떤 질병을 앓은 기간이 길었으면 회복하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진다고 한다. 3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호모 마스쿠스로 진화한 학생들 중에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 오는 데 그 정도의 세월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모든 학생들의 마스크를 벗기려고 하지 말고 기다리는 여유도 필요하다.

개개인의 특성 고려와 함께 필요한 것은 조직문화 재형성이다. 학생 주도로 관련된 논의를 할 수 있게 장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호모 마스쿠스’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각한 정리한 후 토론하게 하면, 마스크 착용 해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반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학습공동체에 바람직한 마스크 착용 문화를 만들도록 기회를 주면, 호모 마스쿠스가 되었던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는 두려움을 떨치고 다시 호모 사피엔스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