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헬리코박터균, 잘 알고 잘 치료 받자”

정윤 사랑샘병원 원장

2023년 01월 17일(화) 19:52
정윤 사랑샘병원 원장
대학병원에서 소화기내과 전임의를 할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선배였던 마취과 교수가 위내시경을 받았는데, 만성적인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이 상당히 심한 상태였다. 과거 기록을 보니 이미 헬리코박터 세균이 확인된 상태였지만 치료는 받지 않았다. 당시에는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소화성 궤양과 같은 명확한 사유가 없으면 처방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위염이 심하고 치료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하고 약 처방을 했다. 나중에 대학병원에서 나와 지역병원에 근무하던 중 그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헬리코박터 균을 죽이고 나서 수십년을 괴롭히던 속쓰림과 소화불량 증상이 사라져서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의 진료 지침과 임상적으로 실제 경험하는 것이 때로는 다를 때도 있다. 현재는 진료 권고 지침이 많이 변화돼 만성 속쓰림, 소화불량 증상에 대해서도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연구결과 헬리코박터균이 확인된 경우 4명 중 1명꼴로 제균 치료를 통해 이런 증상이 완치된다고 한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염뿐 아니라 위암과도 연관성이 높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이 세균을 1급 위암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위암 발생이 가장 높은 국가이고, 국가 주도하 2년마다 40세 이상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위내시경 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위암을 조기에 발견해 위암 사망률이 낮춰지고 있음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런데 위암을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무증상 성인에게 제균 치료를 시행할 경우 위암 발생률이 4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헬리코박터균으로 인한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과 같은 전암성 병변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제균 치료를 할 경우 위암 발생 예방 효과가 더욱 큰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 상부위장관, 헬리코박터 학회에서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지난해 위암 예방을 위해서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권고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2013년부터 모든 감염자의 헬리코박터균 치료를 건강보험에 적용시켰다. 그 결과 한해 140만명이 제균 치료를 받았으며 2000년에 50%를 웃돌던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2018년에는 30% 초반으로 떨어졌다. 일본 소화기학회는 이 기간 국가 의료 정책으로 약 2만명의 일본인이 헬리코박터균 감염에서 벗어나 위암으로 사망하는 것을 면했다고 추정한다.

헬리코박터균은 위 점막에 서식하면서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과 같은 만성 위염을 유발하는데, 이러한 병변이 장기간 방치될 경우 위암이 발생할 수 있다. 제 때에 7-14일간의 제균 치료 항생제 복용을 통해 위암을 예방하고, 경우에 따라 소화기 증상도 호전시킬 방법이기에 필자는 환자분들에게 검사와 치료를 권고하는 편이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연령에 따라 다양한데 우리나라는 10대는 20-30%, 20-40대는 58-66%, 60-70대는 54-64% 정도로 추정된다. 이 세균은 위 점막, 치석에 서식하는데 타액 등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대변을 통해 항문에서 입으로’ 전파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밀접한 접촉이 많은 가족이나 동거인들은 함께 검사하고 치료하는 것이 좋다. 진단은 위내시경을 통해 조직을 소량 뜯어 검사하거나 금식 상태에서 내쉬는 호흡을 통해 시행하는 요소호기 검사, 또는 혈액검사를 통해 가능하다. 그중에 위 조직으로 PCR 검사를 할 경우 세균의 내성 여부까지 확인이 가능해, 가장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다.

소화기내과 전문 의사로서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통해 증상이 개선되고, 위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특히 30-40대의 젊은 부모 세대들에게는 어린 자녀들에게 전파될 수 있는 세균의 대물림을 끊어주었다는 보람도 함께 느끼고 있다. 반면 오랜 기간 방치된 세균으로 인해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으로 위가 많이 손상된 분들을 보면 ‘좀 더 젊을 때 치료를 받으셨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위내시경 검진이 활성화된 우리 사회에서,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조기 치료를 통해 위가 건강해 지는 ‘위 복지 사회’로 나아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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