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주 제4시집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출간 상처·결핍, 그리고 치유… 시편에 담아낸 삶 속 위로의 시간들 분주한 일상속 틈틈이 적어낸 5부 53편 작품 선봬 최명진 기자

2023년 02월 05일(일) 19:10

‘삶의 상처와 결핍을 치유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순간’

고선주 시인의 제4시집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걷는사람刊)가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오후가 가지런할 이유’ 이후 5년 만에 나온 책이다.

제3시집이 풍성하고 신선한 비유로 읽는 맛을 배가시키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새로운 삶의 향방을 모색하는 동시에 부재한 ‘집’의 부정성으로부터 삶을 지켜낼 가능성을 살펴본다.

여기서 ‘집’은 시인 자신이 겪었던 경험의 산물로 읽힌다. 그동안 펴냈던 시집에서 한결같이 볼 수 있었던 ‘좌절’을 근간으로 한 삶의 깊은 상실은 더욱 분화하며, 상처와 결핍을 보듬는 일상의 복원 또한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시집은 ‘너를 보니 먼지가 수북해 오늘은 어때’를 비롯해 ‘골목길 끝 하늘 구겨 넣은 집 한 채’,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 파닥거림’, ‘길을 가다 막힌, 길 끝에서 만난 일상’, ‘너 지친 거니 가슴에 솟구치는 그 무엇’ 총 5부로 구성됐으며, 분주한 일상 틈틈이 창작한 53편이 실렸다.

고선주 시인

고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두 가지 방향에 주목했다. 서정의 익숙함과 안정에 관한 시각을 역설적으로 해체해 다시 생성시키는 시도를 하는 한편, 개별 시들의 유사성을 묶어 각 부 구성을 어느 정도 탈피했다.

이번 시집은 제2부에 방점을 찍는다. 그가 주시한 것은 ‘집’이다. 그에게는 생소한 시적 도전이었다. 집에 대한 기억들은 차고 넘쳐 나지만, 시적 사유를 어떻게 감정으로 엮어내면서 시적 맥락을 부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바쁜 일상으로 무뎌진 시적 감성을 일깨우기 위해 습작기를 다녀온 고 시인은 올 한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를 일깨우는 데 주력했다. 시집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문예지에 발표한 몇몇 시편들을 제외하면 모두 신작이다.

‘핏기없는 몸뚱아리,/어둠을 뒤적거렸다’(잠의 접시)거나 ‘상처가 나자/그늘이라는 딱지가 입혀졌다’(햇빛 꼬집다), ‘양볼을 스친 적막이 갈라졌다’(소음의 탄생) 같은 표현들은 그가 밋밋한 시적 결론에 대해 얼마만큼 의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마치 반복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며 시적 감성의 안정적인 흐름과 시적 힘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도들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무슨 일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풋풋했던 스무살과 첫사랑이 봉인돼 있는 어제의 어제를 기억해 잔소리와 눈치, 투정이 비빔밥처럼 비벼져 있는 어제를 기억해’(어제처럼)라거나 ‘北이라 쓰고 book이라 읽어봅니다//…중략…//北 콘서트 열리던 날/남쪽에 모처럼 北적北적하겠지요’(北과 book)는 그런 징후를 대표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시편들이다.

이는 시인의 시집들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았던 시적 표현들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적 감성을 깨우기 위해 습작기 시절로 돌아갔다 온 시인이 시적 표현 영역을 더 확장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시적 결론에 힘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군데군데 친숙하거나 혹은 낯선 비유들을 구사하면서도 마지막 연이나 행에 강한 파동을 새기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드러나 보인다.

이병국 시인은 해설을 통해 “시인은 집의 부재 혹은 상실의 정동으로부터 길어올린 시적 주체의 삶이 개인의 특수하고 고유한 경험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사건으로 확장되기를 희망한다”며 “그리고 그것이 강력한 정서적 공명이 돼 우리에게 울림을 가져다주는 한편, 비록 고단할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지속되는 삶으로 이어지길 요청한다”고 평했다.

한편, 고선주 시인은 199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계간 ‘열린시학’ 및 ‘시와산문’ 등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 ‘밥알의 힘’, ‘오후가 가지런한 이유’를 펴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