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남파랑길 62코스 갯벌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다 |
| 2023년 02월 14일(화) 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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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자락 해변에 남향으로 화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화포마을을 감싸고 있는 봉화산에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화포항 동쪽은 순천만이, 남쪽은 여자만이 자리한다.
소망탑이 있는 화포항을 출발해 해안선을 따라서간다. 길 아래 연안은 광활한 갯벌이다. 순천만 갯벌은 2006년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연안습지로 생물다양성과 경관이 빼어나다. 보전가치가 뛰어난 순천만은 ‘순천만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이곳 갯벌은 2018년 7월25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도 지정됐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아 소라, 굴, 조개류와 새우, 게 등 갑각류, 낙지와 주꾸미를 비롯해 숭어·짱뚱어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갯벌은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정화한다. 갯벌에 살고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해 막대한 산소도 뿜어낸다. 숲을 ‘지구의 허파’라한다면 갯벌은 ‘지구의 콩팥’에 비유된다.
죽전방조제를 따라 걷는데 안쪽은 논이고 바깥쪽은 갯벌이다. 갯벌에는 육지의 하천에서 흘러온 물이 갯길을 만들어놓았다. 갯벌 가운데로 구불구불 이어가는 갯길 주변에는 하얗게 얼음길이 생겼다. 갯벌 바깥쪽에는 꼬막양식장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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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량면과 벌교읍 갯벌에서는 꼬막양식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벌교꼬막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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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길을 걸으면서 바라보면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순천시 해룡면·별량면, 보성군 벌교읍이 감싸고 있는 순천만과 여자만이 거대한 호수 같다.
순천만과 여자만은 썰물 때가 되면 광활한 갯벌로 변한다. 해변마을 사람들은 이 갯벌에 의지하여 조상대대로 살아왔다.
길은 창산마을로 이어진다. 바다와 갯벌을 마당삼고 있는 창산마을은 작고 소박한 어촌마을이다. 마을 앞 방파제에 서니 조금 전 화포항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걸어왔던 길들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여자만에 떠 있는 여자도와 장도 역시 가깝게 다가온다. 여자도와 장도 뒤로 고흥의 산봉우리들이 그리움을 가져다준다. 갯벌 가운데로 풀어진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갯길은 그리움의 끈이 돼준다.
거차마을에 도착했다. 거차마을은 별량면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마을 뒤에는 천마산이 솟아있고, 마을 앞에서는 갯벌이 둘러싸고 있다. 농지가 적었던 거차마을 주민들은 갯벌에서 칠게와 꼬막, 가리맛조개, 낙지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다. 길쭉하게 만든 뻘배에 한쪽 무릎을 짚고 다른 한발로 갯벌을 제치고 다니면서 고기를 잡았다. 거차마을에서는 이러한 주민들의 고기잡이 방식을 활용하여 뻘배체험장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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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차해변에는 수명을 다한 뻘배들이 길가에 줄줄이 걸려있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내륙으로 방향을 튼다. 별량면소재지쪽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에 다리가 없기 때문에 교량이 있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용두마을 앞을 지난다. 마을 앞으로는 염전터를 간척해 만든 농경지가 반듯하고 제방 너머 넓은 갯벌에는 장구섬이 떠있다. 과거에는 마을 앞 갯벌을 막아 만든 염전이 번성해 주민들 대부분이 염전에서 일했으나, 염전이 쇠락하면서 그 자리에 제방을 쌓고 대룡저수지의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는다. 용두방조제를 지나자 들판 뒤로 구룡마을이 바라보인다.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구룡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 넓은 들판이 바라보인다.
2번 국도가 지나는 호동마을을 만나면서 남파랑길은 순천시 별량면을 넘어 보성군 벌교읍으로 접어든다. 2번 국도 굴다리를 지나 벌교길을 걷는다. 들판을 적시며 흘러온 조그마한 하천에는 바닷물이 섞여 갈대밭을 이루고 있다. 여자만을 드나들며 고기잡이를 하는 작은 배 두 척이 하천하구에 정박돼 있다.
긴 호동방조제를 따라서 걷는데 안쪽은 간척으로 이뤄진 넓은 들판이 자리하고, 바깥쪽은 여자만이 거대한 호수처럼 잔잔하다. 뒤돌아보면 용두항 앞에 떠 있는 장구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장구섬 뒤로 여수반도가 길게 뻗어나가면서 마루금을 이룬다. 방조제를 따라 걷다보면 고흥군 동강면에 솟아 있는 두방산·병풍산·비조암이 삼형제처럼 다정하게 다가온다.
낮은 야산을 등지고 너른 들판과 여자만을 바라보고 있는 호산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한옥이 많아 정겹게 느껴진다. 자연을 이루고 있는 산과 바다, 들판과 마을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내 마음도 저절로 평온해진다.
드넓던 여자만은 벌교읍내로 향하면서 벌교천에 자리를 양보한다. 벌교천이 여자만과 만나는 지역인데, 어디 강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다. 강이 바다고 바다가 곧 강이니 강과 바다를 분별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호동방조제를 지나자 영암과 순천을 잇는 남해고속도로 벌교대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벌교대교 근처 해변에서는 벌교갯벌체험장이 운영되지만 겨울철이라 텅 비어 있다. 이 지역은 ‘벌교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벌교대교 아래를 지나 장양항이 있는 진석마을에 도착했다. 진석마을 앞 갯벌 위에는 구불구불 데크길이 놓여있다. 데크길을 걷고 있으니 갯벌 위를 걷는 것 같다. 벌교읍의 건물들이 가깝게 다가오고, 순천과 보성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제석산도 듬직하게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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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겨울철새들이 군무를 펼친 후 물가에 내려앉곤 한다. 벌교읍내를 지척에 두고 둑길을 따라 걷는다. 둑길은 걷기 좋도록 황톳길로 이뤄져있다. 벌교시내에 가까워질수록 갈대밭이 드넓어진다. 벌교천 물길 양쪽에 갈대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갈대밭이 있는 벌교천 하구에 설치된 제방을 ‘중도방죽’이라 부른다. 소설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 중도방죽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실존인물 ‘중도’가 쌓은 방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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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에서 “저 방죽에 쌓인 돌뎅이 하나하나, 흙 한 삽 한 삽 다 가난한 조선 사람덜 핏방울이고 한 덩어린디, 정작 배불린 것은 일본눔덜이었응께, 방죽 싼 사람들 속이 워쩌겠소”라고 말한다. 평화롭기만 한 중도방죽길을 걸으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벌교읍내로 들어선다. 경전선 철로를 넘으니 부용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부용교는 벌교읍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한 교량으로 오가는 차량들이 많다. 길고도 길었던 남파랑길 62코스가 끝나는 지점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무대가 된 별교읍내에 도착했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남파랑길 62코스는 순천시 별량면에서 보성군 벌교읍으로 이어지는 해변길이다. 순천만과 여자만을 바라보며 걷는 길로 드넓은 갯벌과 여러 해변마을을 지나면서 바다와 농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주민들의 소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코스 : 화포항→거차마을→용두마을→구룡마을→호동마을→진석마을→중도방죽→부용교
※거리, 소요시간 : 24.7㎞, 7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화포항(순천시 별량면 학산리 8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