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91)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린다네

2023년 02월 22일(수) 19:27
偈頌(게송) / 진묵대사

하늘이불 땅자리에 산 베개 달 촛불로
하얀 구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취해 일어나 춤추니 소매가 곤륜산 걸릴까.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천금지석산위침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無 却嫌長袖掛崑崙
대취거연잉기무 각혐장수괘곤륜

게송은 산스크리트 가타의 음사인 게(偈)와 의역인 송(頌)을 함께 부른다. 게송은 여러 가지 형식이 있으나 불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8음절을 하나의 구(句)로 해 2개 구가 하나의 행(行)을 이룬다. 다시 2개의 행이 모여서 32음절 시 형식이다. 좁은 의미의 게는 산문 없이 운문만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노래한다.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게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린다네’(偈頌)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고승(高僧)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로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1568년(선조 1) 봉서사에서 출가했는데, 사미승일 때 신중단의 향을 피우는 직책을 맡았다. 변산의 월명암, 전주의 원등사, 대원사 등에 있었다. 신통력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이적을 많이 행했다고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 삼고 /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서 // 크게 취한 가운데 거연히 일어나서 춤을 추니 /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린다네’라는 시상이다.

시제가 ‘게송’(偈誦)으로 돼 있어 ‘게송을 짓기 전에 큰 뜻을 담아’로 의역해 본다. 산문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서술한 다음 운문으로 산문의 내용을 집약해 읊어서 ‘중송게’(重頌偈)라 한다. 한시로 번역된 게는 외형상 한시와 별 차이가 없으나 압운에 얽매이지 않는 점이 다르다. 선종에서 도를 깨우친 경지를 표현하기 위한 게송은 선게(禪偈)라고 했다. 이 게송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짓는 사람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따라 창작됐다. 그러므로 이 게송은 개인의 창작 요소가 풍부하게 들어간 문학작품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한 나머지 큰 시상 덩이를 시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본다.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겠다고 했다. 임서는 과정에서 ‘게송’(偈誦)이라고 하는 시제를 달고도 있지만 ‘게송’(偈頌)이 맞다.

화자는 온 우주를 자기의 터전으로 삼아 더욱 큰 생각에 빠져보려는 시상을 만난다.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어 보니,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린다고 했다. 너무 큰 시상에 어안이 벙벙하다.

※한자와 어구

天衾: 하늘을 이불로 삼다. 地席: 땅을 방석으로 삼다. 山爲枕: 산을 베개로 삼다. 月燭: 달은 촛불이 되다. 雲屛: 구름은 병풍으로. 海作樽: 바다를 술통으로 짓다. // 大醉: 크게 취하다. 居然: 거연히. 仍起無: 이에 춤을 추다. 却嫌: 도리어~을 꺼리다. 長袖: 긴 소매. 掛崑崙: 곤륜산에 걸리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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