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남파랑길 63코스 꼬막과 ‘태백산맥’의 고장 벌교 땅을 걷다 |
| 2023년 03월 07일(화) 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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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63코스는 벌교 땅을 걷는 구간이다. 길은 벌교읍내를 동서로 가르는 벌교천에 놓인 부용교에서 시작된다. 길은 소화다리로 이어진다. 소화다리는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때 총살이 이뤄졌던 곳이고, 소설 ‘태백산맥’ 속에서도 총살장소로 등장한다.
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걷는데 홍교가 보인다. 홍교는 벌교천에 놓인 교량으로 1729년(영조5년) 건설됐다. 원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곳에 뗏목을 엮어서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벌교(伐橋)라는 지명도 홍교가 놓이기 전에 있었던 뗏목다리에서 비롯됐다. 세 칸 벌교홍교는 현존 아치형 석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됐다.
채동선생가를 지나 벌교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용산 아래 언덕을 오른다. 언덕길에서는 벌교읍내는 물론 북쪽으로 벌교읍과 순천시 낙안면에 걸친 넓은 들판이 바라보인다. 넓은 벌교·낙안들판은 백이산, 금전산, 제석산, 노강산에 감싸여있다.
2014년 6월 조성된 태백산맥문학공원에는 가로 23m, 높이 3m의 타원형 화강암 조형물이 있는데, 이 조형물에는 작가 조정래의 캐리커처와 작가소개,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한 글이 새겨져 있다.
벌교읍내 구도로로 접어드니 벌교 금융조합건물이 기다리고 있다. 금융조합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2층 붉은색 벽돌 건물로 건립됐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금융조합건물은 2005년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26호)으로 지정됐다.
금융조합에서 보성여관으로 가는 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자주 들락거리던 중심거리로 오래된 건물이 많다. 지금은 태백산맥문학거리로 지정돼있다. 태백산맥문학거리 한 가운데에 보성여관이 자리하고 있다. 보성여관은 2012년 개·보수가 있었지만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지은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132호)으로, 소설 ‘태백산맥’에서 남도여관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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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역으로 향한다. 벌교역은 부산에서 순천을 거쳐 광주까지 이어지는 경전선이 지나는 철도역이다. 벌교역 도로 건너에는 벌교사람들이 많이 찾는 벌교시장이 있다. 벌교시장에서는 여자만에서 잡히는 수산물이 많이 판매된다. 꼬막의 고장답게 꼬막을 큰 망에 담아 탑처럼 쌓아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부용교에 도착해 벌교천 제방을 따라 내려간다. 바닷물이 섞여있는 철다리 아래에는 작은 어선 몇 척이 정박돼 있다. 벌교천에는 바닷물이 들락거려 갯벌이 새까맣게 드러나 있고, 하천 양쪽으로 갈대밭이 넓게 펼쳐진다. 길은 갈대밭 가운데로 난 나무다리를 따라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다. 갈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으니 갈대바다를 헤치며 항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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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천 건너편 제방은 중도방죽이다. 벌교천 양쪽에 넓게 자리한 갈대밭을 연결해 높다란 목교가 설치됐다. 가운데가 불룩하게 올라온 목교에 서니 벌교천 위쪽으로 벌교읍내의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목교를 지난 벌교천이 여자만을 향하여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유연해진다.
벌교천은 하류에 이를수록 갈대가 적어지고 갯벌천지가 된다. 마침 물이 빠진 상태라 벌교천 하류의 갯벌밭은 더욱 넓어졌다. 여자만으로 향하는 벌교천은 갯벌을 양쪽으로 가르며 휘돌아가고, 물가에는 수백 마리에 이르는 흑부리오리와 청둥오리 같은 겨울철새들이 무리지어 앉아있다. 갯벌에 나 있는 좁은 갯길은 검은 갯벌 위에 그려놓은 추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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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천은 고속도로 벌교대교 아래를 지나 여자만으로 흘러든다. 벌교천이 바다에 다다르면서 갯벌은 드넓어졌다. 시야는 갯벌과 푸른 바다를 거쳐 여자만을 둘러싼 여수반도까지 넓어진다. 벌교갯벌은 2003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2006년 1월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2016년 벌교읍 장도·장암·대포·영등·호동리 일대 해수면 23㎢가 벌교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2021년 세계자연유산에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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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갯벌에서는 맛좋은 꼬막이 생산된다. 벌교갯벌은 펄갯벌과 영양염류가 풍부한 벌교천이 만나 꼬막 서식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벌교꼬막은 갯벌 위를 이동하는 뻘배를 타고 수작업으로 채취한다.
“양념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 ‘태백산맥’에서 묘사한 벌교꼬막에 대한 찬사다. 꼬막은 찬바람이 나는 11월부터 이듬 해 2월까지 생산되는 게 가장 찰지고 맛있다. 갯벌을 벗 삼아 걷다보니 우리의 발걸음까지도 질박해진다. 갯벌 안쪽에는 농경지가 자리해 반농반어 생활을 하는 이곳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대포해변에서는 장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순천·벌교에 둘러싸인 여자만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장도는 벌교꼬막의 주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남쪽에서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망주산이 손짓하고, 망주산 뒤로 고흥반도를 이룬 산줄기가 하늘금을 긋는다. 거대한 호수처럼 보이는 여자만은 여전히 평화롭다.
대포마을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으니 고흥군 동강면이다. 벌교 땅을 지나 고흥 땅에 들어선 것이다. 해변을 따라 죽암리 죽림·죽동·옹암마을이 줄줄이 이어진다. 죽동마을 언덕배기에서 여자만으로 가늘게 뻗어나가 곶을 이룬 지형이 인상적이다. 바다로 뻗어나간 곶이 감싸고 있는 해변마을이 안온하다.
옹암마을을 지나 죽암방조제를 만난다. 대강천이 흘러오는 하구를 막은 방조제다. 방조제 안쪽은 인공호수를 이루고, 호수 뒤로 동강면에 솟은 두방산·병풍산이 우뚝 서 있다. 대강천 양쪽으로 넓은 들판이 자리하고, 들판을 앞에 두고 여러 마을이 둥지를 틀었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고흥군 남양면 망주마을이다. 길고 긴 남파랑길 63코스를 걷고 나니 두 다리가 뻐근하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남파랑길 63코스는 꼬막과 소설 ‘태백산맥’으로 상징되는 벌교 땅을 밟는 길이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홍교, 보성여관, 벌교역 등을 지나 벌교갯벌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고흥 땅에 닿는다.
※코스 : 부용교(동)-벌교홍교-벌교역-부용교(서)-벌교대교-대포해변-죽암방조제-팔영농협 망주지소
※거리, 소요시간 : 19.9㎞, 5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부용교(동)(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천2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