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육십 년 전의 편지 한 통 / 수필 - 박명순 |
| 2023년 03월 13일(월) 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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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2월9일부터 1966년 5월24일 05시25분까지 약 5년 6개월 동안 있었던 슬픈 이야기입니다. 흙을 사랑하는 한 여성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초등학교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린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하고 편지로만 소식을 전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요.
그간 모아두었던 22통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며 옛날의 추억들을 다시 더듬고 있습니다. 5년여 동안 주고받았던 시간 속에 꼭 한번 만나고 헤어져야 했던 슬픈 이야기들.
난 공군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하게 되었고 그 여인은 교사로 근무하게 되어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지요. 군산비행장에 근무할 때 면회를 왔는데 난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와 함께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날 군산 시내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여관을 정해주고 잠이 오지 않으면 읽으라고 노만 빈센트 필(Noman V Peale)이 쓴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란 책을 사주고 우린 부대로 귀가하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고속버스도 없고 교통이 불편한 그 시절에 먼 곳 인천에서 군산까지 왔는데 홀로 두고 돌아서는 내가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우리는 먼 길을 사이에 두었기에 편지가 둘 사이를 이어갔습니다.
생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제4번을 바쳤던 폰 메크 여사와 13년 동안 무려 1,2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고백의 슬픈 이야기들은 편지가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요.
그날 처음으로 딱 한 번 만나고 헤어져야 했던 우리의 이야기도 이렇게 빛바랜 편지로 남아 젊은 날의 초상을 떠 올려줍니다.
순 님께
그간 안녕하시었는지? 낙엽이 휘날리던 가을도 가고 이제는 온 대지가 희게 물들어지는 때입니다. 다정한 선생님의 글을 받고서도 그 답서를 드릴 수 없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면서 할 수 없었던 날들 앞에 어찌하여야 될려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이렇게 값어치 없는 얇은 인생을 그래도 곱게만 봐주신 선생님 앞에 고상 앞에서처럼 고개 숙일 뿐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사는 삶이겠습니까? 이제는 자신에게 또 새 생명에 충실해져야겠다고 다짐하며 역겨운 생활이지만 헤쳐나가야겠습니다. (중략)
전 정말 바보인가 봐요.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할 수 없이 먼 유랑의 길에서 새로운 삶을 찾기로 했습니다. 주어진 슬픔이 강물처럼 흘러 고독은 노을과 같이 더욱 짙어지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저를 달래주고 있습니다.
순 님, 정말 착한 永이 되어 드리지 못하여 죄송하오나 어찌할 수 없이 이렇듯 순님 앞에 거짓 없는 저를 보여드립니다. 안녕하시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永 드림
발가벗은 종이 한 장엔 그리운 옛 추억들이 담겨있습니다. 따뜻하고 순수했던 젊은 날의 열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 몸은 길어야 백 년 지나면 없어지는데 편지 한 통이 60년 전의 삶의 파편들을 주어 모으고 있습니다.
삶의 가치를 잃고 허우적거릴 때, 꿈을 잊고 좌절할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깊은 절망으로 흔들릴 때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와 위로와 지혜를 주었던 사연이 많았던 편지들. 부디 옛날의 깊은 상처들을 잘 치유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차이콥스키처럼 슬픈 사연은 아니지만 22통의 편지는 내 젊은 날의 서글픈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추억을 한 조각 한 조각 베어 먹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명순 약력>
▲대한문학 등단(2013)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대한문학작가회 회원, 곡성문인협회 감사
▲저서 : ‘참 좋은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