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대 칼럼]꺾이지 않는 마음, 꺾이지 않는 5·18 시사평론가 |
| 2023년 03월 16일(목) 1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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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파들은 일본 보수파의 자민당을 모델로 하고 한반도의 냉전적 분단구조를 잘 활용한다면 안정적인 장기집권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5·18이 보수파들의 발목을 잡았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보수파들은 매번 5·18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반대로 한국의 진보파와 민주진영은 5·18에 기대어 민주화를 이뤄내고 보수파들의 압도적인 정치 공세를 넘겨왔다. 때문에 보수파들은 어떻게든 5.18을 부정하고자 한다. 5·18을 그야말로 땅에 파묻거나 정당성에 타격을 가하지 않고서는 집권의 명분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주의나 ‘북한군 침투설’을 가지고 매도해 보았지만 영리한 국민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보수파들이 취한 전략은 내부로부터의 와해와 이간질이다. 사실 5·18은 세계의 다른 역사적 사건들처럼 철통같이 단결된 하나의 세력이 만들어낸 사건이 아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각개의 민중들이 외부의 공격과 억압에 맞서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조적 억압에서 비롯된 필연적 사건으로 느껴졌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어난 우발적 사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어쨌든 5·18은 그 분열과 상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생명체처럼 스스로의 논리를 만들어내며 역사적인 파동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역사를 진보시키고 지탱해 오는 힘의 한 축이 되었다.
이제 보수파들은 5·18이 만들어온 이 불편한 상황을 넘어서고 싶어 한다. 5·18을 완전히 땅에 파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5·18이 적어도 역사의 유령처럼 자신들의 꿈에 자꾸 악몽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 보수파들의 그런 집요한 열망이 만들어낸 사태가 작금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적 화해”라는 거짓 무대가 아닌가 한다. 5·18은 적어도 우리 현대사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적 대의에 입각해 완벽하게 일치단결해서 벌인 운동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분열과 갈등, 상처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강력한 파동이 일어났다. 그 잔잔하면서도 강력한 힘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지금 보수파들이 노리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이 고비에 설 때마다 역사적으로 호명되고 있는 5·18이 지닌 불굴의 가치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가해자들의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거짓된 화해가 성사된다면 5.18의 정당성의 한 축은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거짓된 화해무대가 사실로 인정된다면 앞으로 보수파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5·18을 생명력 없는 역사의 화석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자신들의 영속적인 집권을 가로막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 한국과의 거짓된 화해를 통해 과거에 대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또 다시 거침없이 동아시아의 군사적 패권국가로 부활하고자 하는 열망을 숨기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5·18을 바로 세우는 것은 역사적 사건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손이 아니라 오늘 당장의 나의 일로 여기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뤄질 것이다. 5·18의 가치를 내 삶의 가치로 여기고 그것을 지키지 않고서는 내 삶을 지키기 못하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5·18은 바로 세워질 것이다.
오늘의 내 삶이 조금이나마 5·18에 빚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5·18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는 일에 내 일처럼 나서야 마땅하다. 또한 오늘의 내 삶의 고통이 5·18의 가치가 제대로 세워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그 역시 5·18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는 일에 내 일처럼 나서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이는 한 5·18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또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