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잉의 시대 / 천세진 |
| 2023년 04월 09일(일) 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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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낳은 문제적 아이들 중에 ‘사치’와 ‘과잉’이 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문제아들이니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시장이 받아들일 만한 속도로 줄어들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치와 과잉도 그 자체로 단단하고 광범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고,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 둘이 전적으로 악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종종 사치와 과잉을 만드는 과정에서 순기능을 하는 부산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치와 과잉은 따로 의미를 살펴야 한다. 사치는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지만, 과잉은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현대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과잉이야말로 인류와 지구의 심각한 문제다.
긴 역사를 가진 사치는 도덕적 비난을 피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질 리포베츠키는 ‘사치의 문화’에서 “유명 상표에 대한 태도는 예전보다 계층화가 덜 된 반면, 보다 개성적이고 보다 감성적이 되었다”고 썼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족에 새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최상위 계층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진입장벽을 만들어 명품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차별적인 개성을 부여하고, 문화·예술적 아우라를 버무려넣어 그들만의 감성세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명품이 어느 계층에 속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감성적 장치로 해석이 달라지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돈이 곧 귀족’이라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의 대상물은 생래적 필요가 아니라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생래적 필요를 넘어선 사치는 과잉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과학기술문명의 폭발적 성장은 필요와는 무관한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 인간의 삶 속으로 우겨넣고 있다. 그런 와중에 소비의 대상물이 기계적 시효가 아니라 감성적 시효에 따라 폐기되는 소비 현상이 나타났는데, 환경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과잉은 타인과의 비교 때문에 심화되지만, 자연과의 단절 때문에 심화되기도 한다. 과잉은 비자연적 공간(도시)에서 자연과 단절적으로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자연적 삶은 불필요한 것들의 탄생을 최소화하지만, 자연과 유리된 삶은 필요와 불필요의 구분을 가볍게 여기게 만들고,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필요와 불필요를 결정하는 것은 광고와 슈퍼마켓에 머무는 시간이다.
명품을 쫓는 사치만이 과잉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의 소비 전 영역에서 과잉이 발견된다. 과잉은 결국 자연에 위해를 가하지만, 그 사실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연과 멀어지면 질수록 불필요한 산물들이 자연에 대해 가하는 잔인함에 대해 무지해진다는 사실을 코로나19를 통해 배워야했지만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끝날 것 같다.
불과 백 년 전만해도 존재를 몰랐던 과학기술문명의 산물을 반강제적으로 사용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지금의 삶이 완전한 것이라면, 이전의 삶은 불완전한 것이 되어야 한다. 현시대가 완전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고, 이전 시대는 몽매의 시대였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문명적 산물들이 사라지면 우리 삶에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생각도 강박관념에 불과하다.
과학기술문명의 산물은 무수한 편리를 낳았지만, 인간의 사유를 신에 가깝게 만들어준 것은 아니다. 필요한 사유는 줄어들고 있는데,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먹고, 입고, 듣고,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너무 많은 사람들과 가볍게 연결되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끌어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바로 과잉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데 현대인들은 과잉에서 달아나려 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 시대의 상징어 ‘풍요’는 다른 말로 대체되어야 한다. ‘과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