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광주땅 '최초' 이야기](88)중화요리점·광주화교학교

20세기 초 충장·금남로 덕의루·화흥루 등장
지난해 중국음식점 552곳…황제쟁반짜장 19곳 최다
북구 임동오거리 ‘영발원’ 1955년 개업 ‘현업 최장수’
광주화교학교 1948년 양림동 들어섰다 계림동 이전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2023년 04월 27일(목) 20:12
지난해 말 현재 광주시 외국인 가운데 한국계 중국인 978명(남 520·여 458)과 중국인은 3천633명(남 1천643·여 1천990)이다. 화교는 2021년 236명에서 222명(남 112·여 110)이다. 1911년 23명, 1930년 388명, 1968년 710명이었다가 1975년 482명, 2010년 334명으로 감소추세다.

2022년 광주전화번호부에 수록된 중국음식점은 552곳이다. 동명상호는 ‘황제쟁반짜장’이 19곳으로 가장 많다. 이어 ‘최고루’ 13곳, ‘금룡’ 12곳, ‘청와대’·‘황후쟁반짜장’ 각 11곳, ‘신락원’·‘양자강’ 각 10곳, ‘희망반점’ 9곳, ‘스피드반점’ 8곳, ‘무등’·‘선우반점’ 각 7곳, ‘교동짬봉’·‘만다린’·‘왕자관’·‘중화루’·‘화풍’ 각 6곳, ‘장가계’·‘청화반점’ 각 5곳 순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광주 최초 중화요리점은 1920년대 후반 충장·금남로 일대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옛 지도로 본 광주’ 20세기 광주음식문화지도에 광복 이전 중국음식점으로 하나은행 건너 ‘덕의루’와 충장로5가 57번지 ‘화흥루’로 표기돼 있다.

2021년 양세영은 ‘일제강점기 전남지역 화교의 정착과정과 경제·사회적 활동’을 통해 1930년대 초 황금동 ‘송죽루’, 광산동 ‘아관원’, 금남로3가 ‘영·연빈루’, 충장로4가 ‘아서원’을 면담과 함께 학생운동관련 법원자료·지상보도를 근거로 제시했다.

1950년대 중반 자료에 충장로 ‘왕자관’, 5가 52번지 ‘중흥루’(왕수지), 황금동 19번지 ‘여명반점’(곡소증), 83번지 ‘춘화루’(이길량)가 보인다. 1964년 3월 출장소별 도소매상황이 광주시사에 나온다. 중국요리점은 35개소(동부 14·중부 10·남부 7·서부 2·북부 2)다.
1940년대 충장로1가 왕자관(예향1995년11월호).

1965년 호남약도에는 충장로5가 65번지 ‘영춘루’(윤청심), 금남로4가 ‘덕의루’(박중표), 황금동 45-2번지 ‘광일각’(조중호)을 볼 수 있다. 1966년 체신자료에는 임동 ‘영발원’, 충장로4가 18번지 ‘천흥식당’, 학동 611번지 ‘부흥식당’이 수록됐다.
1955년 개업한 임동오거리 영발원(향토지리연구소2023).

1977년 광주상공명감에 중국식당으로 광산동 52번지 ‘복생관’(김기춘), 광산동 77번지 ‘동화반점’(이운래), 유동 41-19번지 ‘복래향’(왕수발), 금남로5가 147번지 ‘제일반점’(강연선), 충장로4가 54-2번지 ‘충장옥’(문순례)이 수록돼 있다.

1983년에는 서석동 66번지 ‘금성정’, 충장로1가 16-2번지 ‘대해수’, 충장로3가 19번지 ‘용문’, 충장로4가 15번지 ‘영락’, 금남로4가 9-2번지 ‘만리장성’, 금남로5가 135번지 ‘영안반점’, 황금동 13-8번지 ‘외백’, 황금동 62-1번지 ‘명륜관’을 찾을 수 있다.

2004년 6월 계림동 광주화교(華僑)학교를 방문했다. 신작4길2 계림동 22, 한국광주화교협회·한국광주화교소학이 밝힌 교문을 들어서니 아담한 운동장 주위로 3층 본관, 2층 별관이 보였다. 교실수업 모습과 점심 조리과정도 견학했다.


2004년 계림동 광주화교학교·교문표찰·교실수업 모습(향토지리연구소2004).

교무실 게시판 광주지구화교전화번호마표(2003)에 중화요리점 29개, 성씨 왕(王) 16개, 강(姜) 7개, 장(張) 6개, 손(孫) 4개, 소(蘇)·여(呂)·위(魏)·임(林)·주(周)·정(鄭)·필(畢) 각 3개, 곡(曲)·소(蕭)·양(梁)·우(于)·조(趙)·차(車) 각 2개, 갈(葛)·곽(郭)·냉(冷)·동(董)·마(馬)·예(倪)·유(劉)·진(陳)·초(初) 각 1개 포함 137개가 있다. 나주·장성·영암·해남지구 5·4·1·2개도 함께 있다. 옆 부착물에는 학비 59만5천원 포함 94만원 정도이며, 유치반은 122만원을 읽었다.

지적자료에 계림동 20번지는 밭 938평으로 47개로 분할된다. 1961년 4월 손덕풍, 1975년 왕씨 땅이 들어온다. 20-2번지는 송정리 612번지 이경채와 공동소유다. 22번지 412평은 분묘지로 1915년 병문리 문치홍 땅이다. 1960년 서상녀, 1974년 조선창으로 소유자가 변한다.

2007년 김영술이 쓴 ‘광주화교의 역사적 기억에 대한 고찰’에 따르면 1948년 양림동 제중병원 병동에 광주화교소학교가 설립한다.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한 채 계림동으로 이전한다. 선생님 한 명이 초·중·고급반으로 나눠 초가집 창고를 얻어 의자를 놓고 수업을 한다.

현 식당터 판자건물 때 선생님 3명, 학생 130명으로 늘었다. 계림동 농사꾼 필·왕·유씨가 땅을 기부하고, 모금으로 학사를 지은다. 현재 유치부-6학년까지 학생은 180명이다. 화교는 20명 뿐이고, 한국인이 160명이다. 2005년 화교는 72세대 500여명이다. 식당업이 35가구로 가장 많고, 주물공장 2, 교원·잡화상 각 7, 행상(무역) 5, 한의원 3, 오락실 1가구다.

옛 북광주우체국 건너 수의사회관 곁 서림로 임동오거리 ‘영발원’(장용화)을 찾았다. 1955년 개시가 든 메뉴판에 짜장면은 7천원이다. 현업최장수집은 지금 9명이 일하고 있다. 임동 60번지는 본래 향사리 이씨 논이었다. 60-2번지 49평은 1969년 12월5일 장덕충(張德忠)터가 된다.

1945년 광복직후 개업한 충장로1가 8번지 ‘왕자관’은 2019년 4월 말 폐업한다. 1995년 이재의 글에서 뽑는다. 오복 옷가게 자리에 왕지의(王之義)가 청요리집을 차리고, 아들이 가업을 잇는다. 1969년 손문채가 인수한다. 그는 1962년 도청 뒤 동아생명빌딩에서 대명관을 운영했다.

1990년 6월 붉은벽돌집을 헐고, 대지 56평 5층 건물을 신축한다. 장남 덕채(37)가 경영을 맡고, 21년째 주방장 풍등로(49)를 비롯해 종업원은 11명이다. 식사 30가지와 함께 요리수는 180종이다. 2-4층 200여명 수용이다. 짜장면 4천원, 배달폐지를 선언한다. 1층 전세, 5층 안집이다. 땅문서에 8-2번지가 1974년 5월 계림동 20번지 손문채터가 된다.

우리은행 건너편 구성로변 금남로5가 147-7번지 제일반점 갈춘태(72)는 화교학교 12회로 1968년 외숙에게 이어받았고, 광주 중화요리점 95%는 산동성 출신이란다. 135번지 영안반점 대표 서수화는 남편 강충본(65)도 연태시로 연을 댄다. 출입구 길바닥에 1973년이 새겨져 있다. 서편 충장로5가 42번지 신락원 본점 파랑색 간판에 ‘Since 1982’이 적혀 있다. 학동점에서는 로봇이 음식을 가지고 온다.
충장로5가 신락원 본점(향토지리연구소2023).

4월25일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박물관에서 ‘아주 오래된 이웃-광주 화교사회와 음식문화’를 6월4일까지 전시한다. 전년 안재연이 쓴 ‘광주화의 음식문화’ 책을 접하고, 리풀릿을 받았다.

화교는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다른 문화를 지켜오며 살아온 중국계 이주자다. 우리 곁에서 친근한 얼굴의 중국집 주방장이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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