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쌀 알갱이 속으로 / 수필 - 김정옥 |
| 2023년 05월 08일(월) 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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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영산강 물줄기를 형상화한 비스듬한 길을 지나 강변 전망대에 오른다. 하늘에는 쌀눈처럼 약간 이지러진 보름달이 떠 있다. 물 위에 비친 교교한 달을 보니 달이 술을 부르며 유혹하지만 참는다. 다리 위의 싸라기가 다리 물아래로 반영되어 온전한 쌀 한 톨이 된다. 앗 저것이었구나. 반쪽과 반쪽이 만나 온전한 한 마리 비익조가 되듯, 쌀을 형상화한 반전의 매력이 달밤의 다리에서 펼쳐진다. 쌀 다섯 톨은 조명을 받아 빨간색에서 노랑으로, 노랑은 다시 파랑으로, 보라색으로 무지갯빛에 실려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불빛이 반영되어 완성한 쌀 한 톨. 저 쌀을 얻기 위하여 물을 가둔 승촌보의 풍경. 승촌보에 어리는 쌀들은 주인공이 되고, 저 멀리서 비치는 불빛은 하늘에서 내려온 듯 별이 되어 지평선을 이룬다. 어둠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영롱하게 반짝이 불빛만 보일 뿐. 불빛은 밤의 지평선처럼 띠를 이루며 강과 갈대밭을 에워싸고 있다. 흐르는 물을 보에 가두어 나주평야에 물을 대고 쌀농사를 상징하고 있는 승촌보의 쌀 다섯 톨의 야경은 영산강의 꽃처럼 피어있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한점 불빛이 날아간다. 가까운 광주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날아온 비행기인가보다. 밤에는 비행기도 별이 되어 하늘에 수를 놓는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오리온자리가 못생긴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그 안에 삼태성이 빛나고 있건만, 빛을 수놓고 있는 별들은 지상의 별들에 가려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언젠가 연말에 홍콩에 간 적이 있다. 카메라를 어디에 들이대도 한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되는 환상적인 야경. 한쪽 건물에는 산타클로스, 또 다른 건물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다른 한쪽에는 수레를 끄는 사슴이 나타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나타내는 빛 글씨가 하늘에서 줄줄이 흘러내린다. 가히 빛의 도시다웠다. 홍콩의 빌딩들은 크리스마스 문양을 수 놓으며 자신을 드러낸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가 시작되면 각 건물에서 쏘아대는 레이저와 자기 건물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는 색색의 빛이 하나의 테마처럼 빛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도시의 빌딩 하나하나가 서로 건반이 되어 빛의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
가슴에 새겨진 추억의 빛을 꺼내 보며 쌀빛을 마음에 담는다. 친근하게 펼쳐지는 달밤의 쌀 쇼가 기억 속 홍콩의 백만 불짜리 빛 쇼를 밀어내는 순간이다. 당분간은 이 길을 밤마다 달릴 것 같다.
강에 어리는 달빛 한 가닥을 잡고 현관문을 여니 오색영롱한 쌀이 어느새 따라 들어온다. 내 마음속에도 반짝 빛이 켜진다.
<김정옥 약력>
▲ 대한문학등단
▲ 광주문인협회 이사
▲ 목요수필문학회 회원
▲ 대한문학작가회 이사
▲ 저서 : ‘여행, 그리움에 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