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벼락같이 / 김정연

2023년 05월 14일(일) 19:06

단발마, 순간 번쩍
맥 놓은 하늘 가르자
백양목 생목 가지
왈칵 생피 쏟아낸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너머의 너
왔다 간다
(시집 ‘꿈틀’, 발견, 2019.)

[시의 눈]

오월 총성은 벼락같이 ‘생목가지’ 분지르고 정지되었지요. ‘단말마’의 그 순간은 지나가고, 지금 대낮의 고요가 ‘백양목’ 사이 말려드네요. 거기 단도처럼 박혀 떨던 그날이 옵니다. 난 서재에서 잊었던 오월 항쟁사를 펴들지요. 양림동의 낡은 우리 집의 기둥, 그 관솔 괭이에 찍힌 탄흔에는 아직도 형의 피가 묻어있는 듯합니다. 벌써 43년이 흘렀네요. 하면 형의 큰딸 나이와도 같지요. 한데, 잊을만하면 영혼을 칼로 쑤시는 사람들이 나타나는군요. 그래 ‘아무렇지 않은 듯 너머의 너’처럼 흘러갈까도 했지요. 망월 비석을 눈물받은 치마로 닦으시던 어머니도 가신지 세 해나 지났습니다. 아파트로 이사 왔지만 헐린 우리 집 기둥이 어디선가 또 붉게 변했을까요. 순간, 뜰의 백양목 가지가 뚝 부러집니다. 그건 총성처럼 내게 형의 울음을 끼칩니다. 김정연 시인은 부산에서 나 경희사이버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배반과 조응의 정서를 섬세하게 교차시키며 은유의 장력을 크고 깊게 하는 시인입니다.<노창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