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03)

그대 누이를 만나면 반드시 내 안부를 물을 것이니

2023년 05월 17일(수) 19:29
汾西挽(분서만) - 백주 이명한
兄弟相隨拜父母 地中還似世間無(형제상수배부모 지중환사세간무)
君歸細報吾消息 令妹逢君必問吾(군귀세보오소식 령매봉군필문오)
형제가 따르고 부모를 공경함은
땅속에서 이 세상과 같은지 다른지
그대가 내 소식 알리라 누이가 물으리오.

마지막 먼 여행을 떠난 상여 앞에 즐비한 만사가 그 사람의 행적과 넉넉한 인품을 말해준다. 만사는 친지가 율시나 절구로 쓰기도 했었지만, 때에 따라서 5언이나 7언의 연구(聯句)로 시를 지어 망자의 뜻을 기렸다. 만사가 상여 앞에 4㎞가 넘게 긴 줄을 섰다는 이야기는 이를 분명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형제가 서로 따르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일진데, 땅 속에서는 이 세상과 같다든가 다르다든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그대 누이를 만나면 반드시 내 안부를 물을 것이니(汾西挽)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1595-1645)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이괄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해 팔도에 보내는 교서를 작성했던 인물이다. 벼슬은 예조 판서와 공조 판서를 지냈으며, 성리학에 밝았고,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에 ‘백주집’이 있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형제가 서로 따르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인데 / 땅 속에서는 이 세상과 같다든가 다르다든가 // 그대가 돌아가거든 내 소식 자세히 알리게 / 그대 누이를 만나면 반드시 내 안부를 물을 것이니’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분서의 죽음에 부쳐’로 번역된다. 분서(汾西)는 문정공 박미(1592-1645)의 아호로 선조의 다섯째 따님인 정안옹주와 결혼함에 따라 부마인 인물이다. 시인과 문정공 그리고 그의 부인이었던 정안옹주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짠하다.

시인은 사람이 죽으면 천륜을 따른다고 했고 본래 태어난 자기 고장을 향해 간다고 했던 점을 알고 있어 보인다. 사람 명을 다해 죽게 되면 형제가 따르고 부모를 공경함이 마땅할진데 땅 속에서는 이 세상과 ‘같다든가 다르다든가’를 묻고 있다. 살아있는 자는 아무도 죽음에 미리 간 자가 없단다. 그렇듯이 시인은 이 세상과 같은가 다른가를 묻는다.

화자는 죽음의 천당에 대해 묻더니만 기막힌 시적인 소회 한 마디를 토로하고 만다. 그대가 하늘로 돌아가거든 내가 전하고자 하는 소식 한 마디를 자세히 알리시게 그대 누이를 만나면 반드시 내 안부를 물을 것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이 하늘에 안착해 누구를 만날지 모르겠지만, 화자의 간절한 소망 한 줌을 내뱉고 있어 주목된다.<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汾西: 정안옹주의 부마였던 인물이다. 兄弟: 형제. 相隨: 서로 따르다. 拜父母: 부모를 공경함. 地中: 땅 속. 還: 돌아가다. 似世間無: 세간과 같다 혹은 다르다. // 君歸: 그대가 돌아가다. 細報: 자세하게 알리다. 吾消息: 내 소식. 令妹: 누이로 하여금. 逢君: 그대를 만나다. 必問吾: 내 문안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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