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3주년]尹대통령, ‘5·18 헌법전문 수록’ 언급 또 없었다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 엄수> ‘자유 민주주의’에 방점 기념사 지역 민심 외면 비판 姜시장 “허탈한 마음…대통령 공약 반드시 지켜져야” 민주당 광주시당 “역대 최악의 기념사…말로만 추모” 김진수·박선강·안재영 기자

2023년 05월 19일(금) 00:16

윤석열 대통령이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대한 별도 언급 없이 ‘자유 민주주의’에만 방점을 찍어 지역 민심을 외면한 기념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와 야권에서 요구해온 헌법전문 수록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에 대해 대통령실이 ‘비리에 얼룩진 정치인의 국면 전환용 꼼수에 불과하다. 5·18 정신을 모독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대통령실 스스로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국가보훈처는 18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오월 정신, 국민과 함께’를 주제로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개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보수 진영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2년 연속 기념식에 참석했으며, 여·야 의원 200여명도 함께했다.

기념식에 앞서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오월의 정신 아래 우리는 하나입니다’라고 적은 뒤 오월 어머니들과 함께 추모탑까지 걸어갔다.

기념식은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헌화·분향, 묵념, 경과보고, 헌정 공연, 기념사, 기념 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거행됐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늘 우리는 43년 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항거를 기억하고 민주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민주영령의 희생과 용기에 경의를, 유가족께 위로를 전한 뒤 윤 대통령은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낸 것”이라며 “광주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켜낸 역사의 현장”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오월의 정신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대한 별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기념 공연은 ‘함께 잇는 오월’이란 영상과 함께 전국 각지의 청소년과 청장년들이 ‘바위섬’을 불렀다. 노래엔 1980년 5월 당시 군부 독재의 폭압에 맞서 흔들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킨 열사들의 헌신을 미래 세대와 함께 기억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빗속에 치러진 5·18 43주년 기념식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5·18민주유공자, 유족, 정·관계 주요 인사, 시민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김애리 기자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무리됐고, 이후 윤 대통령은 묘역으로 이동해 전영진·김재영·정윤식 등 열사들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를 놓고 지역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입장문을 통해 “광주시민이 오늘 듣고 싶은 말은 헌법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이었다”며 “기념사에 이 말씀이 빠져 있어 광주시민의 허탈한 마음”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강 시장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올해 종료되고 내년은 국가보고서가 나오는 해임에도 5·18 폄훼와 왜곡은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이런 불행한 일의 반복을 종식시키기 위해 내년 총선과 함께 원포인트 개헌을 다시 한 번 제안드린다.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대통령의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은 성명서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는 역대 최악이었다”며 “지난 세월 5·18은 공격받아 왔고 또 모욕당해 왔다. 오늘 윤 대통령으로부터 또 모욕을 당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광주시당은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공약과 달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월 정신의 헌법 수록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며 “말로만 추모하고 말로만 기념하는 게 대통령의 기념사인가”라고 꼬집었다.

양재혁 5·18민주화운동 유족회장은 “5·18 헌법전문 수록에 대해 재차 강조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진실 규명 등에 대한 이야기도 없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이 기념사 말미에 “오월 정신은 자유와 창의, 그리고 혁신을 통해 광주와 호남의 산업적 성취와 경제 발전에 의해 승화되고 완성된다”며 “광주와 호남이 자유와 혁신을 바탕으로 AI와 첨단 과학기술의 고도화를 이뤄내는 성취를 미래 세대에게 계승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힌 것을 놓고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난해와 올해의 기념사가 유사하다 못해 너무 똑같은 점도 아쉽지만, 헌법전문 수록에 대해 언급되지 않아 실망감이 크다”며 “오월 정신과 AI 등 산업 개발이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며 개탄했다.

광주지역의 한 원로는 “‘2년 연속 참석’이란 파격적인 행보 속에서 너무나도 진부한 대통령의 기념사를 듣고 누가, 어떻게 힘을 내겠느냐”며 “광주가 지치지 않곤 배길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통령이 2년 연속 참석하고 국회의원들도 대거 참석하면서 밖에선 국가 기념식의 격이 많이 높아진 것으로 보이겠지만 알맹이 하나 없는 행사였다”며 “헌법전문 수록을 수도 없이 부르짖었지만, 도무지 나아갈 기미가 보이질 않아 모두가 지쳐버린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정의당 전남도당도 논평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43년 전 오월 영령들이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 폭력에 맞서 피로서 지켜낸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직격했다.

전남도당은 “윤 대통령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5·18 역사왜곡에 대한 단죄,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국민들에게 공표했어야 한다”며 “오월 정신이 호남의 산업적 성취를 이뤄내면 어떻게 승화되고 완성된다는 말인가. 윤 대통령이 오월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지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수·박선강·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