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중년의 법칙 / 이소영

2023년 05월 29일(월) 19:57

이소영

기억력 사라진 자리 건망증 채워지고
빠지는 머리숱만큼 지혜가 자라난다
세월이 가르쳐주는
질량불변의 법칙
//
봉긋하던 쌍봉은 쭈글쭈글 처지고
탱탱하던 뒤태도 조금씩 내려앉는다
샤워 후 몸에게 배우는
만유인력의 법칙
(시집 ‘두근두근 우체국’, 책만드는집, 2023.)

[시의 눈]

화장대의 거울을 뚫고 내 ‘중년’이 ‘쭈글쭈글’ 사라집니다. 그 꼬리가 길까 짧을까 재어볼 틈도 없었지요. 부족한 잠에 비듬으로 ‘빠지는 머리숱’을 훑으며 일상의 전쟁터로 헐레벌떡 뛰쳐나갑니다. 교통지옥을 뚫고 어찌어찌 출근하지만 매 지각판정이었지요. ‘탱탱’함만을 앞세우며 모면하기 급급했네요. 정수리 동그란 탈모는 그 훈장입니다. 중년이란 화석은 내 기억지층엔 발굴되지 않을 거예요. 대학 산악반에서 저축한 근육지폐를 함부로 써버린 시절이었군요. 오늘 안전도 검사를 받으러 갑니다. 그래 병원이지요. ‘탱탱한 뒤태’가 벌써 삭은 지붕처럼 내려앉았다고 내 관리를 탓합니다. 다음 단계의 대기실로 가기 전 나는 ‘질량불변’과 ‘만유인력’이란 글씨를 써 가슴 편액에 담습니다. 이왕 성실치 못한 중년이었으니 다음 노년이나마 대비하기 위해서지요. 이소영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수상과 2014년 ‘유심’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일상에 풍자와 위트를 섞어 대립적 서정의 공간을 구축하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