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대 칼럼]법의 지배원칙과 법을 통한 지배 |
| 2023년 06월 01일(목) 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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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지배 원칙은 법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적용돼야 함을 강조한다. 정부나 권력자들도 예외없이 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을 통한 지배가 법적 틀 안에서 정부의 권력이 행사되기는 하지만 정부나 권력자가 법을 무시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점과는 매우 상이하다. 법을 통한 지배는 전통적인 인치주의와 관련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는 전통적으로 인치주의가 통치의 기본 원칙이었다. 역대의 왕조들은 하늘의 명을 받아 정치를 행한다고 표방했다. 그 하늘의 명이 결국 백성의 목소리로 해석된다고 해도 결국은 왕의 권위와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통치가 행해진 셈이다. 따라서 법을 통한 지배는 임금의 선의에 의존하는 인치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근래 법조인 출신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빈번한 일이 되고 있다. 검사출신 대통령이 나온 이후 법조인들의 정치참여가 당연시되고 더욱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이것은 국가 공동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가 법이라는 점에서 법조인들이 국가를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의 기물이라는 점에서 특정한 출신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원성을 반영하지 못할 뿐더러 그 운영에 있어서도 공동의 이익에 기반을 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부 법조인 출신들이 자신들만이 법을 가장 잘 안다는 오만함으로 국가를 특정 세력의 전유물처럼 활용하려 한다면 매우 우려되는 일이 될 것이다. 최근 들어 법치주의가 아닌 법을 통한 지배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언론에 빈번히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우려를 가중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을 통한 지배의 치명적인 사례는 이웃나라 중국의 고대역사에 등장한다. 중국 최초의 제국, 진나라는 모든 것을 법에 의해 처리했다고 알려졌다.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상벌을 분명히 한 것이 진나라가 성공한 이유였다면, 너무도 가혹한 법집행으로 민심의 분노를 산 것이 진나라가 망한 이유이기도 했다. 진나라는 법으로 흥하고, 법으로 망한 셈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역대 왕조에게 이것은 중요한 교훈이었다. 법을 통한 지배일지라도 인간의 얼굴이 결여돼 있다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의 역대왕조들은 통치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했다. 법을 통한 지배이지만 사람의 얼굴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치주의에 머물러 있을 뿐 근대적인 법의 지배 체제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근대 이후 우리 역사는 인치주의의 허구성에 맞서 싸워온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역대의 권위주의 독재정권들은 법을 내세우며 말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 한국적 민주주의, 정의로운 사회 등을 부르짖었지만 법을 통한 가혹한 통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법은 피통치자인 국민들이나 지키는 것이었고, 자신들은 항상 법위에 군림하는 지위를 누렸다. 이런 전근대적인 법을 통한 지배를 깨부수고 등장하는 것이 근대적 민주주의 사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시민들이라면 항상 법을 가지고 지배하려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법의 지배와 법을 통한 지배는 명백히 다른 이념이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국민이라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들에게 평등하게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해야 하고, 특히 권력자들에게는 더욱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해야 한다. 법의 지배 원칙을 법을 통한 지배로 왜곡하고 오도하는 어떤 정치세력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의 지배 원칙이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법을 통한 지배는 법의 내용과 적용을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