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손주 녀석들의 초등학교 생활 / 수필 - 노진곤 |
| 2023년 06월 12일(월) 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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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녀석들의 학교생활을 지켜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아침에 손주 녀석들이 등교할 때, 엄마가 바쁘면 내가 그 녀석들을 데리고 학교에 간다. 그런데 아침마다 교문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교장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나에게 교장 선생님이란 조회 때마다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높은 단 위에 올라가 훈시(訓示)를 하시는 근엄한 분들로만 뇌리에 박혀 있었는데, 아침마다 교문에 서서 학생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교장 선생님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5월15일, 스승의 날에는 손주 녀석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그동안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들을 찾아가 감사의 편지를 드렸다고 재잘거렸고, 또 3학년인 손녀는 교장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써서 친구들과 함께 교장실에 가서 드렸다고 하면서,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과자가 든 선물 상자를 가지고 와서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는 것을 보고 따뜻한 학교 분위기가 느껴져서 흐뭇했다.
옛날, 엄마들에게는 매일 아침 아이들의 도시락 싸는 일이 큰 부담이었고 큰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급식을 하여 그런 부담과 고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런데 손주 녀석들이 집에 돌아와 “오늘 점심 때 무엇을 먹었고, 맛은 어떠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다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우선 메뉴에 관해 들어보면, 무상 급식인데도 고기와 치킨, 치즈 닭갈비 등은 물론 조기와 피자, 요구르트, 케이크, 과일 등 많은 예산과 정성을 쏟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손주 녀석들이 학교에 다녀와서 “오늘 점심시간에 딸기를 먹었는데, 맛있었다”고 재잘거리면 시중에 딸기가 나오기 시작했음을 알아채고 딸기를 사러 가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급별로 담임 선생님과 함께 급식실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맵다”, “짜다” 하며 김치를 먹지 않는 녀석들이 학교에서는 잘 먹게 되어 아이들의 식생활 습관 개선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또 고기가 나오는 날에는 모든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고기를 배식하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는 애들에게는 고기 대신 김을 준다고 한다. 또 손주 녀석들이 1-2학년 때는 조기 등 생선이 나오면 담임 선생님께서 돌아다니며 가시를 발라주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까지 학생들에게 세심하게 배려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양은(洋銀)으로 만들어진 ‘벤또’를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사라진 낱말인 ‘결식아동’이 절반을 넘었다. 그때 도시락 반찬은 대부분 김치였고, 최고급 반찬에 속하는 생선(?)으로는 멸치가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이 온통 김치 냄새로 가득 찼다. 그런데 지금의 초등학교 급식은 그때와 비교하면 ‘천국의 성찬’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또 미술 시간에 색종이와 스카치테이프, 만들기 재료 등을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데, 옛날 미술 시간에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체벌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손주 녀석들의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다 보니 ‘월사금’이 생각난다. 옛날에는 초등학교에서 매월 월사금이라는 돈을 받았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수업료를 받았지만, 의무교육 기관인 초등학교에서는 수업료를 받을 수 없어서 수업료 대신 ‘매월(每月) 감사(感謝)드린다’는 뜻의 월사금(月謝金)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 월사금을 내지 못한 아이들이 있으면 집에 가서 월사금을 가져오라고 수업 중에 돌려보냈고, 울면서 교실에서 쫓겨난 애들은 대부분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랬던 초등학교가 이처럼 발전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이루어낸 산업화와 민주화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결과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돈만 있다고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이렇게 잘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선생님들의 어린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2세 교육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노진곤 약력>
▲수필가, 시인, 법학박사
▲광주문협·전남문협·광주수필문학회 회원
▲문학춘추작가회 부회장
▲수필집 : ‘아들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