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공부’가 절실한 시대 / 김선기

2023년 06월 25일(일) 19:51

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지금 우리는 ‘막말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유발자는 대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존경받을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거나 고위층들이다. 그들은 지도자로서 품위와 인간의 가치를 내팽개친 채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며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말 공부 교육기관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옛 선비는 글공부가 덕목이었다면, 요즘 사람들은 말 공부를 교양필수로 삼아야 할 일이다.

사회적으로 막말 파동은 흔히 목격되는 광경이다. 발원지는 역시 정치권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막말의 심각성이 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정제되지 않는 사회지도층의 막말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대로 방류되어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TV 채널의 돌발영상이라든지, 각종 사회 관계망 서비스 등에서 산더미처럼 쏟아진 막말의 배설물이 그 심각성을 대변해주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막말’은 ①되는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②뒤에 여유를 두지 않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즉, 막 보기로 하는 말이나 막장에서 하는 말, 하다 하다 안되면 마지막에 하는 말이란 뜻이다.

막말이 무절제하게 사용되고 일상화되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분열과 혼란이 야기돼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진으로 사회적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말은 자기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다. 그 때문에 말은 감정과 의사를 정확하고 진실하게 표현해야만 그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시쳇말로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말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가가 강조해온 이유다.

정치인의 말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은 정직해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논리가 정연하고 품위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핵심을 찌르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게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이자 덕목이다.

누군가와 말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선명해진다. 호감을 느끼던 사람일지라도 소소한 대화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터이다. 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모종의 불편함이 말에서는 여과 없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글에선 꽁꽁 포장하고 은닉했던 태도나 가치관이 말에선 스스럼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때 사용하는 단어, 말할 때의 자세, 목소리의 높낮이 등 말을 둘러싼 요소가 상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입말이나 글말은 우리 사회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말로 가까워진 사이도 있고 글로 연대하는 경우가 있듯, 입말과 글말의 효용 또한 다르다. 우리가 글 실수보다 말실수에 대해선 조금은 관대한 듯싶다.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글 실수보다 말실수가 주는 데미지는 생각보다 큼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무한 반복 재생산되기에 그렇다. 그러니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이 갖춰야 할 덕목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말의 신중함이다.

모름지기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살신성인하겠다고 나선 이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고 국민을 편케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한시도 망각해선 안 된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입신양명에만 몰입해 있잖은가. 이제 국민의 인내심은 임계점에 와 있다. 영민한 그들이 국민적 정서를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그런다는 게 더 화가 치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