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의 검은 얼굴 / 천세진
2023년 07월 09일(일) 18:56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요즘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말 중 하나가 ‘가성비(cost-effectiveness·價性比·가격 대비 성능)’다. 필요와 욕구가 없다가도 싸다는 이유로 지갑을 열기도 한다. 가성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았을 것이다. 지불한 것보다 많이 얻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에밀 졸라(1840-1902)가 1883년 출간한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는 이런 글이 등장한다. “제대로 된 과정을 밟아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그로서는 이 직업이 요구하는 섬세함과 요령을 갖추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하며 배워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상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비싸게 파는가 하는 것이었다.”

소개한 문장은 에밀 졸라가 어느 파렴치한 별난 상인을 포착해서 쓴 글이 아니다. 길드(Guild) 체제 하에서 독점을 보장받았던 상업구조와 상인들의 보편적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파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했던 길드 체제는 1852년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불리는 봉 마르셰 백화점이 문을 연 것을 계기로 균열이 생기고 구매자가 권력을 갖는 구조로 서서히 바뀌게 된다.

파는 쪽이든 사는 쪽이든 어느 한쪽이 권력을 갖는 것은 건강한 구조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사는 쪽과 파는 쪽의 권력이 건강한 균형을 이룬 적은 인류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권력이 존재하는 한 어느 한쪽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성비는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때 가능한 말이다. 뒤집어 보면 누군가는 지불받은 돈보다 더 많은 것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가? 절대 공정하지 않지만, 사는 사람이 권력을 쥔 무한경쟁에 가까운 구조 하에서 상인들은 가성비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가성비는 ‘착취’에서 탄생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상인들은 서비스의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고 자신과 가족, 종업원들의 희생이 투입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자발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착취하는 이들이 불특정 일반 대중이어서 착취자가 특정되지 않고, 가성비의 본질이 대중미디어 매체와 SNS를 통해 끊임없이 미화되고 있을 뿐이다.

가성비의 상징인 박리다매(薄利多賣)는 결코 경제적 선(善)을 상징하는 말이 아니다. 셈은 간단하다. 구매 총량은 인구수에 비례한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가격을 낮추어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다른 상인의 몰락을 필연적으로 유발할 수밖에 없다. “나 살고 너 죽자”라는 말을 짧게 용어화한 것일 뿐이다. 음식값이 저렴하다고 해도 하루에 다섯 끼, 여섯 끼를 먹을 수는 없고, 음식이 아닌 사치용품이라고 해서 면벌부를 받을 수는 없다. 불필요한 구매는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결국은 우리의 생존 기반인 지구를 해친다.

인간은 전체를 보며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공동선을 위해 행동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가 필요하고 눈앞의 작은 이득을 쫓지 않는 도덕적 태도를 가져야 하는데, 그때의 도덕적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을 받는 것도 가책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칭찬을 들으면 들었지, 싸고 좋은 음식과 물건을 골랐다고 해서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인간은 눈앞의 작은 상황만을 계산하며 산다. 그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그런데 곳곳에서 만들어진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결국은 큰 파장을 몰고 온다. 사소하고 작은 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미화하기에도 너무 쉽다. 얻는 이득도 크지 않아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 작은 악이 곳곳에 퍼져 있다면 그때는 총량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회는 사소한 존재들이 각각의 작은 울타리에서 다른 울타리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총량으로 움직인다. 그걸 무시하고 보지 않으려 하면 비극이 생긴다. 그 결과물이 무한경쟁 사회가 된 한국이다. 싼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노력한 것에 비례한 정당한 가격이 좋은 것이다. 누군가를 착취하는 것이 더는 무용담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살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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