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차 한 잔으로 더위를 이기자 / 김영식

2023년 07월 10일(월) 19:45

김영식 남부대학교 교수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 중의 하나가 아마도 ‘역대급’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기상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역대급 더위가 시작됐다. 영국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의 기후학자 프레데리케 오토 박사는 “이는 우리가 기념해야 할 이정표가 아니라 인류와 생태계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경고했다. 장마와 함께 찾아온 습한 더위는 냉장고,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정도이고, 길에서는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손에 들고 연신 손 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일 두세 번씩 무더위에 조심하라는 경고 방송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지구의 기상이변과 환경재앙은 인간의 가치관까지 흔들어 놓는다.

어린 시절 더위를 피해 마당에 모여 모깃불을 피워 놓고 옥수수를 삶아 먹고, 부채질해 주시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에 잠이 들었던 기억은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게됐다. 필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앞 쓰레기 청소를 하고 들어와 찻물을 끓여 하루의 시작을 차와 함께한다. 가끔 깊은 산골을 찾아가 약수를 길어와 찻물로 쓰기 때문에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차 맛을 위해 그 정도의 수고는 내 마음을 정화하는 일이다. 최근에 차 엑스포가 광주에서 열려 들러 보았는데 다들 하는 얘기가 국내 차(茶) 산업의 미래를 걱정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오랫동안 생활 차인으로 살아온 필자도 걱정은 앞선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놀랐던 것이 저렴한 가격으로 홍차를 생활화하는 그들의 차 생활이었고, 중국 여행에서도 차를 생활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 우리의 일상 ‘다반사’가 안타깝기만 하다. 무더운 날씨 짜증이 나는 일상들 속에서 나를 찾는 좋은 방법이 차를 마시는 여유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차를 더 시원하고 여유롭게 마시는 법을 생각해 봤다. 일명 ‘웃음 차 마시기’다. 먼저 편안한 몸으로 찻자리를 준비하고 가볍게 목과 어깨 등을 스트레칭 한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덥힌다. 얼굴이라는 다관에 미소 한 스푼을 적당량 넣고 팔팔 끓는 마음을 조금 식혀 다관에 붓는다. 깊은 호흡을 몇 번 하다 보면 가슴 깊은 곳 웃음꽃 잎에서 향기와 맑은 물이 배어 나온다. 잘 우러난 미소와 웃음을 잔에 붓고 향기 나는 미소와 웃음 차를 마신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맑은 웃음 차의 향기와 맛을 느끼면서 잠시 미소를 지어본다. 이렇게 시원한 웃음 차 마시기를 반복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청아해진다. 뜨거운 물에 풀리는 찻잎을 보면 마치 잎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차를 마시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자연이 주는 선물로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참 많은 것 같다.

‘영구적 위기’의 시대에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환경문제, 전쟁, 전염병, 기후 위기, 사회문제 등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 가느냐에 따라 행복도도 많은 차이가 날것이다. 차를 끓이기 위해 손수 물을 뜨고 귀한 차를 달여 마시며 밝고 깨끗하고 그릇됨이 없는 삶을 생각했던 선비들의 차 문화는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치국(治國)의 근본을 담아내는 또 하나의 문화적 그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렵다 힘들다 지쳐가는 현대인들이 웃음 차 한잔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척박한 땅과 바위틈, 험준한 고산의 악조건을 이겨낸 찻잎은 그 향이나 약성이 뛰어나다. 우리 삶이 점점 어렵고 힘들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니 비싼 차가 아니더라도 시원한 맑은 물(白茶) 한 잔 마시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도(道)는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 도를 닦는 수행터가 될 것이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문인이자 화가이며 다인이였던 자하 신위는 “많은 여인을 거느리고 밥 먹는 것은 아무리 즐거워도 색·향·미가 뛰어난 차보다 못하다. 좋은 차는 좋은 사람과 같아 자신에게 웃음을 준다”라고 적고 있다. 위기의 시대에 내 마음을 잘 우려 맑은 웃음의 향이 배 나오는 웃음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어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