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경루 한글 현판 옥에 티 될라 / 김선기
2023년 09월 24일(일) 19:54
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조선 세조 때의 문신 신숙주가 ‘東方第一樓(동방제일누)’라고 극찬했을 만큼, 호남 누각을 대표하며 19세기까지 실존했던 희경루(喜慶樓)가 광주공원에 엊그제 모습을 드러냈다. 1451년에 희경루가 건립됐으니, 꼭 572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제, 희경루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구동 미디어아트 존, 근대 문화유산의 산실인 양림동 권역과 광주향교·관덕정·사직단 등을 잇는 전통 문화권역의 앵커 문화시설로 자리 잡을 게 분명해 보인다.

희경루는 1451년(문종 1년) 무진군수(茂珍郡守) 안철석이 군 단위에서 광주목으로의 승격을 기념키 위해 ‘함께 기뻐하고 서로 축하한다’는 뜻의 ‘喜慶樓’를 지금의 충장우체국 자리에 건립했던 전통 누각이다.

광주시가 전라도 정도(定都) 천년을 맞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희경루를 되찾기 위해 60억 원을 들여 지난 2018년부터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 중층누각 형태의 중건 사업을 펼쳐왔다.

다행히 희경루의 옛 모습이 동국대박물관 소장 보물 제1879호 희경루 방회도(榜會圖)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역사적 고증 작업에 탄력을 받았다. 애초 있었던 충장우체국 자리가 아니란 점에선 다소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렇게나마 희경루를 시민 품에 안겨주고자 노력한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번에 중건한 희경루에는 정·후면으로 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정면에 한자로 제작된 현판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집자한 것이다. 희경루의 ‘喜慶’은 문종 즉위년 경무 3월 222쪽에서, ‘樓’는 같은 해 8월 268쪽에서 각각 글자를 따왔다. ‘조선왕조실록’에서의 집자는 역사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고 깊다. 누구의 발상인지 모르지만, 아이디어 제공자의 해박한 식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한글 현판을 놓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한글 현판을 쓰고 ‘광주광역시장인’, ‘강기정인’ 등 2개의 낙관을 새겨 넣은 모양이다. 물론 과거에는 지방관이 건축물 현판 글씨를 직접 쓰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이번 일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 즉 타자의 시각이 곱지않다는 점이다. 광주시장의 글씨를 현판으로 사용한 건, 누가 보더라도 ‘치적 내세우기용’이란 오해받기 쉬운 알고리즘이 내재해 있다.

설령, 주변에서 ‘과거에도 현직 지방관이 직접 쓴 사례가 있었으니, 광주시장이 현판 글씨를 쓰면 좋겠다’고 요구했을지라도, 본인이 완강하게 고사했어야 옳지 않았나 싶다.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모습을 우린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다. 특히 요즘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러한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다.

수년 전, 전남도 한 지자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임자가 혈세를 들여 건립한 조형물을 ‘지역정서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걷어냈다. 신임 지자체장이 취임 일성으로 CI와 캐릭터를 바꾸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논란에 휩싸인 희경루 한글 현판도 그렇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강 시장이 좀 더 사려 깊은 고민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광주의 앵커 문화시설이 될 희경루를 572년 만에 되살리는 큰일을 해놓고도, 아주 사소한 문제로 인해 그의 공이 자칫 옥에 티로 남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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