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理念)전쟁과 예송(禮訟)논쟁 / 김일태 |
| 2023년 10월 09일(월) 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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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1947년 7월 과도정부 입법의원에서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모리간상배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으나 미군정청이 친일파 제거를 반대해 공포되지 못했다. 정부수립 후 해방 이전 반민족행위자의 처벌을 위해 1948년 9월22일 전문 32조로 공포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친일행위자 680여 명을 조사했으나, 이승만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와 친일세력들의 노골적인 방해 공작으로 1949년 9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해체돼 실패했다. 이런 정치적 및 사법적 노력의 무산으로 한국사회는 친일파 청산의 기회를 잃어버렸고, 그 후 친일과 반일의 지속적인 갈등을 초래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개발도상국에서 산업화로, 군부 독재로부터 민주화를 이룩했던 보수와 진보의 경계는 무너지고 자유와 공산전체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념 전쟁으로 비화해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부, 대통령실, 광복회와 관련 독립운동가 기념 추모회, 시민단체와 보수단체들, 그리고 국민들마저도 편이 갈라지고 있다.
사전(辭典)적으로 자유는 강제와 구속에서 벗어나 개인의 인권을 확립하는 것으로 근대 시민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반면에 전체주의는 모든 분야를 국가로 흡수하여 종속시키는 국가주의적 정치적 체제로 심지어 경제와 시민단체, 그리고 문화 활동조차도 하나의 조직에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우선적이며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파시즘이나 나치즘의 우파도, 사회주의의 좌파도 해당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개인의 양심과 생각의 자유, 개인의 의견과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 경제적 선택의 자유, 그리고 결사와 집회의 자유를 신장시킴으로써 국가의 권력 집중과 간섭을 배제할 수 있으며 전체주의적 사고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이념보다 우선이다.
역사적으로 조선 왕조에서 정치적 당파의 분열, 대립과 반목으로 인한 당쟁은 민생과는 동떨어져 국가의 혼란만을 자초했다. 선조 1590년 조선통신사의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세 보고에서 당리당략에 의한 상반된 주장으로 맞섰고, 당시 주도권을 지닌 동인의 주장대로 별다른 방어책 없이 임진왜란(1592)이 발발했다. 그리고 인조 때 소중화(小中華) 사상의 친명 정권 서인들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무시한 대가로 후금과 형제 관계의 정묘조약을 맺었다. 이후 조선은 주전파와 주화파의 허송세월로 병자호란(1636)이 발발해 청과는 군신 관계라는 굴욕적인 강화로 청일전쟁의 시모노세키조약(1895)이 체결되기 전 까지 종속적인 외교 관계를 이어갔다. 이처럼 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대외적 외교의 선택은 국민의 삶이 피폐되고 국가의 존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더욱 더 한심한 당쟁은 현종 때 효종과 효종의 비 국장과 관련해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慈懿大妃)의 상복 문제로 2차례의 예송(禮訟)논쟁이 일어났다. 예학은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현실적인 민생과 너무도 동떨어진 정쟁이었다. 1차 논쟁(1659)은 기해복제(己亥服制)로 효종 승하 후 상복 3년설의 남인과 기년설(1년설)의 서인에서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어졌다. 2차 논쟁(1674)은 갑인복제(甲寅服制)로 효종의 비(인선왕후) 승하 후 기년설(1년)의 남인과 대공설(9개월)의 서인이 대립해 정국 주도권이 남인으로 넘어갔다. 서인과 남인의 예송논쟁은 처음에는 “천하의 예는 같다(天下同禮)”라는 예학의 전통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백성의 마음을 외면하고 사대부의 기득권을 챙김으로써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여야가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쟁을 일삼고 있으며 타협은 없고 서로를 증오와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정권의 일방적 독주와 독선으로는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고 상대편의 비방만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오만에서 협조, 분열에서 통합, 반목에서 상생으로 나아갈 때 지역, 세대, 성별, 노사, 계층 간 격차를 좁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