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22)영광군 법성면 법성2리 김경희 씨 ‘조기죽’ 영광(靈光)이 품어낸 영광(榮光)의 맛 세대를 이어온 경험과 손맛이 더해진 영양 만점 보양식 후각·미각 일깨우는 부드러운 고소함 건강한 기운 불끈

2023년 10월 17일(화) 20:35

300여 년 전의 고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조기죽

1700년대 조선 후기, 특이하거나 몸에 좋은 조리법 및 식재료의 저장법과 기본조리법 등을 수록한 조리서 ‘소문사설’에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바로 붕어죽에 대한 내용인데, ‘한국고전번역원’으로부터 자문을 얻어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붕어를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닦아 물기를 없앤다. 살코기만 발라 반죽처럼 짓이겨 가루처럼 체로 거른다. 맑은 장국에 부드러운 *원미죽(元米粥)을 쑤는데, 죽이 끓으려 할 때 죽물을 조금 떠서 짓이긴 붕어 반죽에 타서 고루 저어 살점이 뭉치지 않게 한다. 그런 뒤에 붕어 반죽을 탕에 넣어 골고루 저어서 죽을 만든다. 맛이 매우 좋으며 비린내가 없다. 경자년(1720년, 경종 즉위년)에 대내(大內)에서 죽을 쑤어 따뜻할 때 임금께서 드셨는데, “맛이 매우 좋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조기죽(助氣粥)은 석수어(石首魚·조기)로 만드는 데 만드는 방법은 위와 같다. 내가 예전에 환자가 있는 집에서 이 방법을 들었다.”

*원미죽(元米粥) : 쌀을 씻어 말린 뒤에 맷돌로 반 토막이 나도록 거칠게 갈아 그 가루는 버리고 알맹이로만 쑨 죽을 말한다.

특히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에서 ‘석수어’(石首魚)는 머릿속에 돌이 들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기(助氣)와 동의어이다. 이 문헌을 통해 조기죽은 환자에게 기운을 북돋아 줄 정도로 효능이 좋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300여 년 전의 고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조기죽은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국내에서 조기 생산량 최대를 자랑하는 전남 영광이다. 2011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한 ‘영광군 법성포’는 1900년대에 작성된 ‘開港場ト附近市場トノ經濟及交通 係’(122면)를 인용하며 법성포에 대해 ‘이 포의 전면 칠산탄은 유명한 어장으로 특히 조기의 풍산은 전국에 비교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부터 영광 칠산어장의 조기는 명성이 그만큼이나 대단했었던 것이다.

법성포 사람들은 영광 조기를 재료로 구이, 탕, 전 등 다양하게 조리해 식탁에 올렸었고, 그중에 특별히 조기죽은 집안 내력으로 이어져 내려온 향토음식이었다. 영광 법성포 토박이로서 조기죽을 만드는 솜씨가 좋기로 소문난 이가 있으니 현재 법성2리에 살고 있는 김경희 씨이다.

“내가 어릴 때 기억나는 게, 아프면 우리 엄마가 조기죽을 쒀줘. 동네 사람들도 누가 아팠다 하면 우리 친정엄마가 조기죽을 쒀서 가. 그만큼 좋은 것인가 봐.”

그의 친정엄마는 물론 시어머니도 만들었던 조기죽은 아픈 자식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어미의 정성이 담긴 보양식이었다. 옛날 법성포 사람들은 ‘조기죽을 먹었더니 막 힘이 난다’, ‘조기죽을 먹으면 기운이 솟는다’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한낱 ‘죽’에 불과할 뿐이지만 이런 말이 생길 정도로 영광 조기의 맛과 영양이 탁월한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50여 년간 굴비집을 하고 있는 그의 남편은 이렇게 대답한다.

“선친이 조기 잡는 어부였는디 20년 정도 했어. 옛날에 칠산바다에서 조기는 2월에서 5월까지 봄철에만 잡는디 절기상 곡우(穀雨) 때가 되면 조기잡이는 끝나. 여기서 알을 다 쏟아버리고 연평도 쪽으로 올라가. 그렇게 빈 몸으로 가면 연평도 조기는 살이 없고 맛이 없제. 근디 칠산어장에서 산란기 때 잡은 조기는 살이 통통하고 알이 꽉 차서 더 맛있당께.”

‘영광굴비’ 본고장인 법성포는 유명한 ‘칠산바다’에 가까운 어업 근거지로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현재 토사가 많이 쌓여 항구로서의 기능은 많이 쇠퇴했으나 조기의 어획으로 인한 어항의 기능은 지속되고 있다.

과거 법성포구에서 무동력선으로 2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칠산바다. 유자망과 안강망을 각각 갖춘 중선배들이 조업하면 60-70년대에는 길이 30㎝나 되는 큰 조기들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2022년 법성고을지편찬위원회가 펴낸 ‘법성고을지’는 19세기 김정호가 만든 전국지도 ‘청구요람’(靑邱要覽)을 인용해 ‘칠산 파시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밀물이 들어오면 지나다니지 못하고 물이 빠지면 수로의 중앙이 강처럼 변한다. 조기와 청어가 나오기 시작하면 어선이 모여든다.”

파시는 성어기에 중매인과 어민들이 고기를 사고파는 바다의 어시장을 일컫는데, 조선시대에 칠산 파시가 있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 시절, 법성포에 어선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오는데, 질꾼, 셈꾼 등 항구 노동자들은 조기를 운반하고, 여성들이 주가 됐던 엮걸이꾼, 즉, ‘엮걸이 아줌마’라고도 통칭됐던 이들은 상인들이 염장한 조기를 짚으로 일일이 엮으며 제법 짭짤하게 돈을 벌었다.

김 씨의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모두 엮걸이를 했다고 한다. 10마리씩 엮은 굵은 조기는 나무로 만든 ‘걸대’라는 건조장에서 말려졌는데,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세심한 손길과 영광의 청정 햇빛, 그리고 해풍이 함께 어우러져 최상의 굴비가 생산됐다. 오늘날 법성포의 주요 수입원인 굴비를 파는 가게들이 300개 이상 한 곳에 집중된 배경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한다.

예부터 법성포구의 중심지는 ‘진내리’와 ‘법성리’이다. 김경희 씨 부부의 고향은 둘 다 ‘진내리’다. 그의 남편은 20대에 굴비집을 하기 위해 지금의 법성2리로 이사 왔는데, 결혼 후 일가를 이뤄 지금껏 살고 있다.

법성포구 토박이 김경희 씨가 집안 내력으로 내려온 향토음식인 조기죽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다.

2022년 법성고을지편찬위원회가 발행한 ‘법성고을지’는 ‘법성2리’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잘 보여준다. ‘법성2리’의 탄생은 법성리(法聖里)에서 연유한다.

조선시대 진량면 외리에 속했던 법성리는 일제강점기인 1911년, 포구 앞 해변의 약 5.129㏊(1만5천500여 평)가 매립돼 새로운 시가지로 조성됐다. 매립 지역에 법성면사무소와 주요 관공서, 일본인 집단거주지인 농장과 상가 등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세가 커졌다. 1913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서 검산, 중리, 외리, 내리, 후장동(호장동), 화천동 각 일부가 합쳐지며 법성리라고 불리었다. 1934년에는 면 청사 뒤에 있는 홍삭거리와 밤모실을 이어주는 마을 길을 경계로 하여 북쪽 지역은 외법성리(外法聖里), 남쪽 지역은 내법성리(內法聖里)로 나뉘었다. 그 후, 1964년 ‘운영리제’로 재편되면서 현재처럼 7개 리(里)로 나눠졌는데, 이때 편성된 법성2리가 지금에 이른다.

‘내법성’이라고도 불리는 법성2리는 일제강점기에 곡물검사소, 법성금융조합, 치과 개원 등으로 당시 가장 번화한 곳이었고 법성포의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신시가지로서 토착민과 이주민이 정착함으로써 취락을 이루게 됐고 현재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법성2리에서 자체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전통이 없다고들 하지만, 법성포 사람들은 매년 음력 5월5일 단오제를 전후해 조선시대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법성포단오제’(국가무형문화재 제123호)에 참여하며 미풍양속을 지켜가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법성포의 민속축제처럼, 유래가 깊은 조기죽.

이제 그 조리 과정을 김경희 씨의 솜씨를 통해 살펴본다. 먼저 맛의 기본을 좌우하는 조기는 가장 맛있을 때인 봄철에 잡은 선어 상태로 준비한다. 그래야 육질이 부드럽고 제맛이 나기 때문이란다. 어머니 시절에는 어른 팔뚝만 한 조기들이 잡혀서 내장도 버리지 않고 죽을 쒔는데, 지금은 수확이 옛날 같지 않아 어른 손 한 뼘 크기의 조기 내장을 제거한다. 조기 손질 후, 소금간은 절대 금물.

팔팔 끓는 물에 손질한 조기 5마리를 넣고 잡내 제거를 위해 저민 생강과 소주를 넣는다. 1시간 정도 불린 멥쌀을 손으로 으깬다. 냄비에 참기름을 넣고 약 3분간 쌀이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쌀뜨물을 부어 센 불로 끓인다. 20분쯤 지나 조기가 잘 삶아지면 살만 발라내고 국물은 체에 걸러 낸다. 탱글탱글한 조기 살과 국물을 쌀과 합방하고, 주걱으로 저어주면서 끓인다. 3분쯤 지나 쌀뜨물로 농도를 맞추고 풍미를 더하기 위해 잘게 다진 표고버섯과 당근을 넣어 한소끔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소금 간을 하지 않아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냄비에 물이 팔팔 끓을 때, 손질한 조기 5마리를 넣는데 잡내를 없애기 위해 그는 어머니의 방식인 된장보다 저민 생강과 소주를 사용한다. 조기가 익는 동안 그는 1시간 정도 불린 멥쌀을 용기에 담아 한동안 한 손으로 휘감아 돌리다가 손바닥으로 힘주기를 반복한다. 한 손으로 손바닥에 힘을 주면서 휘감아 돌리기를 반복한다.

“조기죽을 쑬 때 불린 쌀을 깎아서 써요. 쌀을 깎아 쓴다는 것은 손으로 으깨는 건데, 이렇게 하면 쌀알이 작아지면서 쌀뜨물이 나오니까 더 고소해요.”

쌀 하나에도 이전 세대의 경험에서 터득한 내공이 이어진다. 물을 부어 뽀얀 쌀뜨물을 따로 받아놓은 뒤, 열을 가한 냄비에 참기름을 넣고 약 3분간 쌀이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쌀뜨물을 부어 센 불로 끓인다. 20분쯤 지나 생강의 향긋함과 함께 조기가 잘 삶아지면 살만 발라내고 국물은 체에 걸러 낸다. 탱글탱글한 조기 살과 국물을 쌀과 합방하고, 주걱으로 저어주면서 끓이다가 통마늘을 한 줌 정도 넣는다. 3분쯤 지나 쌀뜨물로 농도를 맞추고 풍미를 더하기 위하여 친엄마가 넣었던 양파 대신 잘게 다진 표고버섯과 당근을 넣어 한소끔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불맛이 더해지며 조기 살은 녹고, 하얀 쌀에 주황색 당근과 고동색 표고버섯이 어우러지며 걸쭉한 조기죽이 완성된다.

한 숟가락 가득 떠서 입에 넣으니 고소한 향이 확 퍼지고, 씹을수록 싱싱한 조기 냄새가 한층 더해진다.

이 감탄스러운 향미에 “음~ 맛있다”라는 찬탄이 절로 난다. 통마늘과 함께 먹으면, 은은한 마늘 향이 감칠맛을 더하고, 음미할수록 침샘이 솟아난다. 부드러운 조기죽을 삼킬 때까지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고소함은 후각과 미각을 풍성하게 채운다.

칠산바다에서 살찌운 조기의 맛과 영양이 온몸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건강한 기운이 불끈 솟고 속이 든든해진다.

친엄마의 솜씨를 물려받아 가족의 건강을 위해 조기죽을 해주고 있는 김경희 씨. 오랜 세월 동안 영광 법성포 사람들의 지혜가 녹아든 조기죽은 그의 손길을 통해 옛 명성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조기죽 한 술이 누군가의 기운을 차리게 하고, 주저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며, 누군가에게는 살맛까지 더해주는 소중한 우리의 향토음식으로 자리하게 되길 기대한다.

<남도밥상 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