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이남박 / 시 - 유영례 |
| 2023년 10월 23일(월) 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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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있는 대로 다 파낸다
그렇다고 끊어진 인연이 다시 올까
내 무슨 죄로 이렇게 길고 긴 골을 내는 걸까
아래는 촘촘하고 얇게
위로 올라올수록 넓고 깊게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이어나간다
행여 한 줄 잃어버리면 다시는 못 올릴 그 길
골은 깊고 부드러웠다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
쌀 씻고 돌 고르는 나무 함지박
나는 이남박* 속으로 쌀이 되어 걸어 들어갔다
너도 예전엔 무척 귀한 존재였는데
이제는 발목 잡힌 채 누워 있는
내 변명이나 들어주다니
못된 놈은 소중한 인연을 싹둑 자르고
가슴에 대못을 박듯 힘들어도
끄끝내 그러고 싶었다고 말한다
크기에 비해 세상 가벼운 너는
도대체 누구니?
왜 나를 위로해 주는 거냐고?
돌 같은 인생 아니라고?
나는 뽀얀 쌀뜨물을 내며 너 안에 머물러 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어.
*이남박 : 쌀 따위를 일 때 쓰는 함지박
<유영례 약력>
▲아동문예 등단
▲광주문인협회 이사
▲시누대 동인
▲호남대 대학원 졸업(문학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