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덩굴의 ‘마지막 잎새’ / 김선기
2023년 11월 26일(일) 19:28
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찬 바람이 세차게 분다. 미국의 작가 O.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는 시간이다. 1905년 발표한 이 소설은, 예술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폐렴으로 죽음을 앞둔 화가 지망생 존시에게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아 준 늙은 무명 화가 베어먼의 따뜻한 마음을 그린 단편이다. 누군가가 더 이상의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희망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희망의 개념을 ‘불안정한 의심’이라고 정의했다. 희망이란 결과에 대하여 의심이 따르는 불안정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희망에는 항상 의심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항상 그 안에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공존한다. 무엇을 얻고자 하면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의 내포가 그것이다. 만약 우리 스스로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성 쪽으로 무게를 둔다면, 바라는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의 장애요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희망의 문이 닫혀 있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많은 의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탓이다.

우리에게 이토록 친밀한 의심이라는 배신자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의심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을 뜻한다. 즉, 의심이란 믿음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력한 믿음이다. 자기 자신을 걱정으로 채운 마음에 긍정적인 믿음의 불꽃이 타오르게 해야 한다. 믿음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보증해 주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준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그것을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수와 베어먼 노인은 존시에게 희망을 주려 애썼다. 그녀의 마음속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면, 잃어버렸던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어서다.

이튿날 아침 수가 창문을 열자 밤새 돌풍을 동반한 세찬 비가 쏟아졌는데도 담쟁이덩굴 잎사귀 하나가 벽돌담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덩굴에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였다. 존시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자신의 자포자기를 깨닫고, 죽기를 바라는 건 죄악이라며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비바람 속에서도 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달려 있었던 담쟁이덩굴의 마지막 잎새는 사실 베어먼 노인이 창 너머 담벼락에 그린 그림이었다. 그는 존시에게 삶의 희망을 주려고 최고의 걸작인 마지막 잎새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차가운 비와 바람에 구두와 옷이 흠뻑 젖은 채 그림을 그렸던 베어먼 노인은 결국 그로 인해 폐렴이 악화해 죽고 만다. 비록 존시를 대신해서 목숨을 잃었지만, 무명 화가로서 사십 년 동안 걸작을 그리기 위해 붓을 휘둘렀던 베어민 노인이 드디어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담쟁이덩굴은 흡판을 이용해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담쟁이덩굴은 감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달라붙어 기어오르는 것이다. 담쟁이덩굴이 이렇게 벽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닮았다. 담쟁이덩굴의 이파리가 함께 절망의 벽을 오르는 것처럼, 우리도 삶의 절망적인 순간에 서로에게 희망을 나눠 줄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은 담쟁이덩굴처럼 누군가와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담쟁이덩굴의 꽃말은 ‘우정’이다. 이것이 오 헨리가 많은 나뭇잎 가운데 담쟁이덩굴의 잎을 마지막 잎새로 설정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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