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본질과 언어 감각을 마주하다 ●저널리스트 매드린 번팅의 ‘사랑의 노동’ 가정·병원·임종 침상 곁 돌봄 관계와 몸 이야기 5년 간의 취재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 담아내 최명진 기자

2023년 12월 03일(일) 19:36

지난 몇 년 간 돌봄은 각종 ‘문제’이자 ‘위기’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동시에 고령화부터 양극화, 공공서비스 붕괴, 젠더 불평등, 환경 파괴, 기후위기까지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핵심적 방안으로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간호사, 의사, 간병인, 사회복지사,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부모를 돌보는 자녀. 나를 돌봐온 존재들과 내가 돌보는 존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 매드린 번팅이 펴낸 ‘사랑의 노동’(반비刊)이다.

저자는 5년 간의 취재를 거쳐 이 책을 써냈다. 종합병원, 호스피스, 시설, 일반의(GP) 진료소, 가정, 시민단체 등 다양한 돌봄 현장을 참관하고 구성원들을 인터뷰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뿐만 아니라 관련 통계, 문헌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회적 돌봄에 관한 거시적이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조망하고, 돌봄의 역사적 측면까지 훑는다.

어느 때보다 돌봄의 가치와 보편성을 강조하는 의제와 담론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사회적 논의는 불충분하다. 돌봄 수요의 끊임없는 증가 속에서도 만성적인 저평가와 저임금·불안정 노동화, 인력·예산 부족, 돌봄 정책과 일선 현장의 괴리 등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은 모두 돌보고 돌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음에도 우리 각자에게 돌봄이 내가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그 중요성을 인지한다 해도 그저 두렵고 막막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다. 돌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뤄지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세밀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이 책은 가사노동, 치료, 회복, 사랑의 관계를 주제로 한 문학과 예술을 다룸으로써 돌봄의 세세한 결을 풍부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에 더해, 각 장의 끝에서 돌봄과 밀접한 단어를 제시하고 그 어원과 의미를 밝힘으로써 우리가 돌봄을 이해하는 방식을 주조하는 문화적 배경 또한 들여다본다.

돌봄은 표준화가 불가능하며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이 긴 기간 돌봄을 연구하고 취재해온 저자의 문제의식이자 통찰이다.

돌봄의 많은 부분이 ‘암묵적 지식’에 기반하며, 돌봄은 ‘마음과 촉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돌봄을 이야기할 때 따라오는 주요한 어려움도 여기서 비롯되는데, 저자는 그 한계를 넘어 돌봄의 현실을 전달하기 위해 돌봄 현장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순간들을 포착, 독자에게 전한다.

또 돌봄은 쉽게 ‘머리 대 가슴’, ‘적극성 대 소극성’, ‘숙련 대 미숙련’ 같은 이분법으로 납작하게 인식되곤 한다.

돌봄에 철저히 비즈니스 논리를 적용하거나 돌봄을 (종교적) 자기희생의 결과물로만 여기는 극단의 인식, 돌봄을 여성의 일로 놓는 젠더 고정관념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의 오랜 취재와 관찰,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고 나이 든 부모를 돌본 자기 경험을 엮어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돌봄에는 무엇보다 많은 요소가 얽혀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저자는 “가족·친구·공동체·도시·국가·인류로서 우리가 갖는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또 여기에 토대를 두는 ‘돌봄의 정치’가 새로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새로이 가치를 인정해야 할 많은 요소, 행동, 사람들이 드러나도록 불을 비춰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