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단편이다 / 천세진 |
| 2023년 12월 10일(일) 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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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화를 ‘단편’으로 이해한다. 세상과 인간의 이야기를 2시간 안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상적이고 무의미한 것들을 걷어내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이 사진집 <결정적 순간>(1952)에 사용한 그 이름처럼 ‘결정적 순간’만 모아놓는다고 해도 2시간 안에 담는다면 단편을 피할 수 없다. 2시간 안에 담긴다면 그건 세상도 아니고, 삶도 아니고, 사건도 아니다. 기승전결, 선악 대결, 계몽, 재미 등을 2시간 안에 넣으려면 철저한 계산속에서 이 세계와 인간의 생의 어느 조각을 구겨 넣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단편’이라고 말한 것이다.
상업적 성공을 노리며 특정 감각에 의존하여 해석한 단편이 이 세계의 전모를 밝히고 있기라도 한듯 허세를 떠는 것이 그래서 보기 싫다. 단편으로 전모를 밝혔다면 뛰어난 영화 몇 편만으로도 세계는 근본부터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근본이 달라졌다면 세계와 인간의 삶을 파헤치는 날선 영화들은 더 이상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여전히 탄생하고 있다. 수많은 영화들이 포탄을 퍼붓고 성문을 부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와 생의 근본이 난공불락으로 굳건하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무수한 영화 포탄에도 불구하고 성 안에서 벌어지는 복마전은 식을 줄 모른다.
『미디어의 이해』로 유명한 마샬 맥루한(1911-1980·캐나다·문화비평가)은 영화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렸다. “그것은 거짓된 모습들로 가득 찬 유령의 도시다.” 진실 추적과 계몽에 대해 박수를 보낼만한 작품이 더러 있지만, 맥루한의 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영화 속에 진실한 모습도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들은 세계와 생에 대한 오독(誤讀)으로 대부분 연결된다. 오독은 의도적이지 않은 경우에도 어쨌든 사건이나 시대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만들어낸다. 오독은 결국 유령의 도시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거짓으로 드러날지언정 영화가 지향하는 것도, 벗어나려하는 것도 어찌됐든 삶이다. 처음부터 작심하고 거짓을 구축하려는 영화들도 있지만 꽤 많은 영화들은 진실을 말하겠다고 선언한다. 2시간짜리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영화가 ‘거짓된 모습들로 가득 찬 유령의 도시’라면, 삶은 ‘거짓된 모습들로 가득 찬 유령의 도시’속 일상의 연속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형편없는 영화도 세계와 삶의 모사模寫이고 거울이다. 영화가 모사이자 거울이라고 주장하면 할수록 단편적인 것으로 전체를 해석하려드는 무모한 풍경을 갖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삶은 명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영화보다도 더 불투명하고 복잡하다. 삶에 대한 그 어떤 명징한 정의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영화를 미학으로 이해하려 한다. 영화는 미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인정은 하지만 잘 떼어낸 조각의 미학임은 분명하다. 영화뿐인가? 문학, 미술, 음악 모두가 결국은 조각이자 미학에 불과하다. 현실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다. 매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시야가 전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서울의 봄>이 화제다. 악인에만 주목하면 안 된다. 악인의 뒤에는 그가 탄생하고 꿈틀거리며 마수를 펼치도록 무대를 펼쳐준 거대한 배경이 있다. 악인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선이 아닐 수도 있다. 악인은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도드라지게 태어난 독초일 수도 있겠지만, 배경 없이 탄생하지 않는다. 독초를 탄생시킨 밭이 모두 갈아엎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튼 영화는 단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와 세상의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세상은 점점 영화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세상을 일부 모사하는 시대였는데, 이제 세상이 영화를 모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젠 미학도 전복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