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가 실종된 우울한 계묘년 / 김선기

2023년 12월 26일(화) 19:37

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2023년 계묘년이 불과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각종 송년 모임으로 거리마다 활기가 넘쳤고, 송구영신을 맞는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모습을 영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구석이 없는데, 사람인들 흥이 나겠는가. 이 같은 연말 분위기의 체감은 단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애지중지 아끼던 연필깎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당시의 허탈감과 아팠던 마음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지금이 꼭 그런 심정이다.

교수신문이 올 한 해의 한국 사회를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네 글자로 딱 잘라 정리했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라는 말인데, 2023년을 이처럼 압축적으로 표현해낸 사자성어가 또 있을까 싶다.

‘견리망의’를 선정한 교수들의 근거는 명징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 행위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열과 성을 다했다.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 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우가 적잖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이익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인데, 그럴수록 사회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책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주장하면서 자신과 집단의 이익 추구에 혈안이 됐다.

제집이 없어지는 줄 모르고 눈앞의 이익을 얻기 위해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나 결국은 공멸할 줄 뻔히 알면서 제 편의 이익만 챙기는 견리망의의 모리배들과 뭐가 다를 바 있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견리망의가 그 어느 때 보다 심했다. 국회 상임위 도중 코인에 투자하거나, 공천권이라는 이익 앞에서 바른말을 하지 않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치인과 자녀 학교 폭력에 둔감한 고위공직자 등이 수두룩했다. 또한 물욕에 눈이 멀어 서민을 울린 전세 사기의 견리망의도 우리를 슬프게 했다.

교수신문은 견리망의에 이어 ‘적반하장(賊反荷杖)’을 2위로 내놓았다. 적반하장은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라는 말이다. 교수들은 국제외교 무대에서 비속어와 막말해 놓고 언론 탓하고, 잘못된 국정운영의 책임은 언제나 전 정부 탓 등을 적반하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여기에 언론자유는 탄압하면서 기회만 되면 자유를 외쳐대는 자기기만을 반성해야 함도 뼈아프게 역설했다.

아울러 집권 2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각 사회 부문별 정책은 국민통합에 기여하기보단 올 내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윤 대통령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제시한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안’만 해도 각각 노동권 후퇴, 공교육 훼손, 개혁안 부재 등의 국민적 비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사회 정책을 놓고도 정치·이념 성향에 따른 갈등과 반목이 재현됐고, 사안에 따라선 이익집단별로 ‘견리망의’가 극대화돼 표출되기도 했다.

다가오는 2024년은 청룡(靑龍)의 해다. 오행 사상에서 청룡은 ‘새로운 시작’ 내지는 ‘변화’를 상징한다. 분열을 딛고 새해엔 대한민국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

불행하게도 올해는 ‘견리망의’의 한 해였지만, 내년에는 견리망의가 아닌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