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공간에서 청소년이 자란다 / 설상숙

2023년 12월 27일(수) 19:16

설상숙 광주서구청소년문화의집 ‘시소센터’ 관장

마을이 존재하는가? 우리 도시 광주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마을을 찾자면 다소는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마을의 교육활동가들은 왜 자꾸 마을공동체와 마을교육을 복원하려고 애쓰는가? 아마도 전통적 마을이 가지고 있던 관계망에서 비롯되는 따스한 효과성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적당한 관계망은 우리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뿐 아니라 배움을 일으킨다. 사회적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가족 관계와 또래 관계마저 허술해진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그 어디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고, 어디에서 배우고 있을까?

『마을발견』의 저자 송경애 교장은 그의 책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우분투’에 대해서 말 하면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진정한 사람이 된다.’라고 한 바 있고, 『마을교육공동체 생태적 의미와 실천』의 저자 김용련교수는 그의 책에서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배움과 삶은 일치되어야 하며 삶의 현장과 맥락 속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배움의 기회가 중요하다고 말한바 있다.

마을교육은 우리아이들이 마을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 에서부터 출발 한다. 마을은 지극히 일상적 공간이며, 실체적 공간이지만 마을을 사실적으로 인식하기란 쉽지가 않다. 나와 마을이 관계맺음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있어서 마을은 단순하게 학교 가는 길에 지나가는 통학로 정도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무생물처럼 느껴지는 마을에 나와 관계가 있는 ‘그 곳’과 ‘그 사람’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다.

필자가 속한 단체에서 ‘꿈찾는 달팽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마을에 15개의 직업체험 배움터가 생겼고, 인근 중학교 1학년 100명이 4~5명 정도씩 한 조가 되어 마을 공간에 나와서, 2시간 동안 마을 직업인들의 직업 이야기를 듣고 직업체험도 진행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는 마을에 따듯한 공간 15개가 생겼고,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 수 백 개가 만들어졌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마을의 골목은 이제 통학로 그 이상이 된 것이다. 학교 가는 길에 매일 지나던 ‘그 꽃집’에 ‘그 선생님’이 있다. 또 ‘그 약국’에 바로 ‘그 선생님’ 있는 것이다. 늘어난 관계만큼이나 감정의 결은 늘어나고 배움은 지속되었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 선생님’이 있는 ‘그 곳’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다행히 몇몇 마을에서는 마을교육활동가들이 마을에 청소년공간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청소년들을 만나오고 있다. 그들이 아이들과 만나 지지고 볶아온 세월만큼이나 아이들은 자라났고, 마을의 공간은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또 그 공간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은 어느 순간 후배들의 성장을 넉넉하게 품어내는 바로 ‘그 선생님’이 되어있다. 자신이 받았던 정서적 안정감과 배움을 후배들에게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시작된 지난 십 수년 동안 이제 마을에는 크고 작은 청소년 공간과 마을배움터 공간이 생겨났다. 마을의 활동가들은 공적지원이 없는 어려움 속에서 물질과 시간을 투자해서 마을의 청소년공간들을 지켜 왔다. 안타까운 것은 그 공간들이, 운영의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개도 못 되는 청소년수련시설 만으로는 우리 청소년들의 비빌 언덕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더 많은 청소년수련시설과 마을배움터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광주광역시가 2023년부터 청소년자유공간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으니, 일단은 마을의 소규모 청소년공간들이 공적지원을 받으면서 운영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광주광역시에만 의존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광주광역시교육청도 산하기관(도서관, 연수원, 평생교육관등)의 유휴공간이 지역과 연계되어 지역의 청소년활동의 거점으로 활용되도록 적극지원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