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벽두 신춘문예 작품을 읽으며 / 박준수 |
| 2024년 01월 03일(수)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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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대다수 사람들은 바다로 가거나 산에 올라 말갛게 씻은 첫 해를 바라보며 가족의 안녕과 소망을 기원한다.
-활자에서 피어나는 언어의 향기
필자는 젊은 시절 신년 벽두가 되면 어김없이 버스터미널로 달려갔다. 구내매점의 신문 가판대에서 중앙일간지를 모조리 구입해 집에 가져 갔다. 그리고 방안에 가득 펼쳐놓고 온종일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었다. 문학 신인들이 각고의 산고 끝에 잉태한 패기 넘치는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은 문학 지망생인 필자에게 신박한 즐거움을 넘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잉크 냄새와 더불어 활자에서 피어오르는 언어의 향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덧 짧은 겨울해가 저물었다.
결혼한 이후부터는 가족과 함께 보내느라 나만의 새해맞이 방식이 달라지긴 했으나 요즘에도 신년 초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보는 습관은 여전하다.
문학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신춘문예 응모작 역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쉽게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모 중앙지 응모작의 경우 소설과 시 모두 사회적 고된 현실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았으며 전세사기, 택배노동자, 기후위기, 젠더 등 사회적인 의제가 많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작품 수에 있어서도 최근 2~3년 흐름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늘었다는 분석이다.
당선자 연령도 점점 고령화하고 있다. 또 다른 중앙지의 시나리오 당선자 나이는 59세, 소설 당선자 나이는 55세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문단의 문턱을 넘었다. 그 중 소설 당선자는 30년 가까이 습작을 해온 끝에 당선 소식을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욕이 나오더라고 기쁨을 반어적으로 표출했다.
-갈수록 퇴행해가는 지역문학 위상
흔히 신춘문예 당선을 ‘등용문’에 비유한다. 이는 잉어가 중국 황허 강 상류의 급류인 용문을 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입신출세를 뜻하기도 한다.
무명인이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작가의 호칭을 얻었으니 커다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또 한편으로는 수 백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선되기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라도는 한 때 ‘문학의 고장’이라 불리울 만큼 신춘문예 강세지역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신문지상에서 우리 지역출신 당선자 찾기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해가 갈수록 가뭄에 콩나듯하고 있다.
이는 수도권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문화적 역량도 더불어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 때문이리라. 그렇더라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이자 예향으로 자부하는 광주와 전남이 문학에서 마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자꾸만 퇴행해가는 듯한 우리지역 문학 위상에 대해 걱정하는 문인들이 적지 않다.
지역의 한 중견 소설가는 “과거에는 광주·전남이 문학이 쎈 고장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옛 말이 된 것 같다.”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우리지역 문학이 이처럼 황폐화되고 있는 것은 기존 작가들과 문학지망생들이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쌍도끼를 메고 치열하게 공부하라”
“작가는 오로지 글로써만 평가받는 직업인데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키우려고 하기보다는, 출신학과 동문이나 동향(同鄕)끼리 뭉쳐서 파벌을 만들고 이익집단처럼 군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후진들에게 “등짝에 쌍도끼를 메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독기를 품지 않으면 작가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문학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라 불리울 만큼 가장 근간이 되는 장르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글쓰기 문화가 위축되고 있으나 여전히 문학은 창조의 DNA를 품고 있다. 용의 탄생도 어쩌면 문학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새해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읽으면서 전라도의 인문학적 전통과 문향(文鄕)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한 문예부흥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