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아트씬,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김자이 작가 “경계 넘어선 폭 넓은 예술교류, 지역 문화계 자양분 될 것”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 속 진정한 ‘쉼’ 의미 고찰…‘휴식교환’ 프로젝트 진행 나만의 ‘휴식의 기술’ 작품 속 담아내, 다양한 사례 공유 체험 프로그램 구상 복합문화예술공간 활성화·장기적 창작 지원…문화도시 미래 여는 밑거름 최명진 기자

2024년 01월 16일(화) 19:33

작품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 앞에 선 김자이 작가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일까.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휴식을 위해 또다른 에너지를 쓰거나 나에게 맞는 휴식이라 생각했던 일이 일종의 스트레스로 다가온 적이 있는가. 이처럼 나를 위한 ‘쉼의 여정’은 평생 동안 고민해야 할 숙제 같기도 하다.

모든 이에게는 ‘휴식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은 이미 많은 현대인들에게 ‘힐링’ 내지는 ‘위로’의 의미로 자리 잡았다.

2024년 새해 선보이는 김자이 작가의 작업은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휴식 방법 중 하나다.

지난 4일 오후 기획전 ‘가이아의 도시’가 열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복합전시 3,4관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전시장 한 가운데 놓인 그의 작품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가 눈길을 끌었다.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 있는 밭의 풍경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ACC 제작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이 작품은 작가가 지난 4년 동안 지속해온 휴식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사회 속 저만의 휴식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4년 전부터 주말마다 농사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토종씨드림이라는 단체의 주말농장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해가 거듭해갈수록 밭이 주는 행복과 수확의 결실을 느끼게 됐어요.”

작가의 경작 경험이 담긴 이번 작품은 전시 기간인 약 2개월 간 자라나는 식물들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게 꾸며졌다.

파와 당근, 상추 모종 등이 심긴 아담한 텃밭 옆으로는 작가가 실제 경작할 때 사용한 비료, 삽, 호미 등 각종 도구들이 내걸려 있다.

전시장에 구현된 인공텃밭을 관리하고 있는 김자이 작가.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휴식 방법을 관람객들에게 전시로 소개하면서 리서치 작업도 진행 중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휴식을 취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관람객들이 각자의 휴식 방법을 알려주면 저는 씨앗키트를 드리는 ‘휴식교환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지난 몇 년 간 많은 분들이 자신이 키운 식물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소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휴식교환’에 이어 여러 사람들의 휴식 방법을 아카이빙하는 등 작가의 작업은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 사람들, 그리고 바닷가나 산속 등 생활 환경에 따라 휴식이 다양한지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요. 한국의 경우엔 휴식의 방법이 주로 유튜브 시청이나 인터넷 쇼핑, 수면 등으로 한정적인 점이 아쉬웠어요. 보다 다양한 휴식의 사례가 모이면 사람들과 함께 이를 체험해보는 프로그램도 생각 중입니다.”

텃밭을 일구며 ‘양봉’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작가는 2023 광주시립미술관 생태미술프로젝트 전시에서 버려진 폐벌통을 활용한 설치작품 ‘휴식의 기술 - Bee happy’를 소개했다. 윙윙거리는 날개짓 소리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우리가 사는 도시 속 벌의 멸종 위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김자이 작가의 ‘휴식의 기술 - Bee Happy’. 버려진 폐벌통을 활용해 만들어진 벌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버려진 폐벌통 모습

“주변에 농사 짓는 사람이면 벌통을 한두개씩 꼭 갖고 있더라고요. 요즘 유럽에서는 건물 옥상에다 꿀벌을 키우는 ‘도시 양봉’이 성행한다고 해요. 이상기후 등으로 꿀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 시대, 환경이 갖는 소중함을 전하고 싶었어요.”

작가가 본격적인 휴식을 찾게 된 것은 2010년 영국 런던에서의 유학 시절.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그는 갑상선암 진단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그간 휴식을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 작가는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떤 휴식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이 자기와 맞는 것인지 리서치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정한 휴식의 필요성은 이내 작업으로 나타났다.

동(動)적 휴식인 뜨개질 작업부터 소리를 통해 마음에 안정을 얻는 싱잉볼 명상 등은 작품의 소재가 됐다. 그리고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시작됐던 ‘농사’는 보다 성공적인 작가만의 휴식 방법으로 다가왔다.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난 뒤 작가는 광주에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속적인 레지던시 활동을 통해 제주도 등 타지뿐만 아니라 독일 뮌헨, 아이슬란드 등 해외에서도 꾸준하게 작업을 펼치는 중이다.

그는 레지던시의 많은 기능 중에서도 ‘교류’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항상 있어요. 유학에 다녀와서 거의 매년 해외 레지던시에 지원하거나 참여하려 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오는 저마다의 생각과 특유의 분위기에 많은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제 휴식 시리즈도 그렇구요.”

지난 5일 작가는 멕시코로 향했다.

2022년 아이슬란드에서 인연을 맺은 외국 작가의 소개로 전시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멕시코 제2의 수도라 불리우는 과달라하라에서 한 달 간 머무르며 다양한 휴식의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제 휴식의 방법이 여러 지역을 거쳐가며, 그리고 그곳에서 맺은 인연으로 계속 확장해가는 것 같아요. 제가 주기적으로 레지던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여러 지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는 지역 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창작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광주는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문화예술 분야 지원이 적지 않은 편이에요. 다만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단기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조금 아쉬워요. 1년 이하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는 게 사실 어렵거든요. 조금 더 지속적인 지원이 따른다면 예술인들이 작업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난해 광주시립미술관 생태미술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김자이 작가.

아울러 그는 지역 내 복합문화예술공간 활성화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시각예술 말고도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활동이 많잖아요. 광주에선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 그 역할을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 내에 이러한 문화 공간들이 더 많이 생겨나 다양한 예술인들이 보다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여러 방면의 작업을 거쳐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일궈나갈 것을 강조하며 우리 삶 속 ‘휴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매체를 찾으려 해요. 그게 미디어든 설치든 평면이든 한 가지로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각자 상황이 다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잘’ 살기 위해 ‘쉼’은 미뤄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 모두가 자신만의 ‘휴식의 기술’을 펼쳐보일 수 있길 바라요.”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