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어린 사죄’…‘그들’이 전하는 역사의 진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 다룬 연극 ‘봉선화Ⅲ’ 리뷰 나고야 시민 배우 20여명 출연…일제 강제동원 실상 고발 ‘아리랑’ 제창·양금덕 할머니 장면, 관객 눈물 자아내기도 최명진 기자

2024년 02월 25일(일) 19:29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다룬 연극 ‘봉선화Ⅲ’가 지난 24일 빛고을시민문화관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사진은 일본 나고야 시민연극단 등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진상 규명 활동을 펼쳐온 이들의 단체사진.

“우리는 강제동원의 역사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기업의 진실된 사죄를 바랍니다.”

공연 막바지 무대에 오른 일본 시민 배우 20여명의 눈가가 촉촉했다. 일렬로 늘어선 이들이 공연의 끝을 알리는 인사를 건네자 관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일제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다룬 연극 ‘봉선화Ⅲ’ 공연이 지난 24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공연장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는 600여명의 관객들이 함께 했다.

연극 ‘봉선화’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회(나고야소송지원회)의 진상규명 활동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조선인 어린 소녀들은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도토쿠공장에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극심한 중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고, 1944년 도난카이 지진으로 함께 일하던 동료를 잃는 아픔 등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나고야소송지원회는 지진 당시 강제 동원된 한국인 소녀 6명이 사망한 사실을 밝혀내고, 한국인 유족들을 찾아 나서며 희생자들을 위해 미쓰비시 공장터에 추도비를 건립한다.

공연에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80년에 걸친 고난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그들의 한을 함께 풀고자 진상 규명에 나서는 나고야 시민들의 활동상을 조명한다. 대사는 대부분 일본어로, 무대 양옆 모니터의 한글 자막을 참고해야 했지만 일본 시민 배우들의 진심어린 몸짓과 표정이 공연 내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연 제목 ‘봉선화’는 어느 봄날 부활하는 꽃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조선인들의 모습 그리고 8·15 광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소재로 사용된다.

강제 동원된 어린 소녀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이나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 기업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 등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봉선화’ 연출을 맡은 나카 토시오 감독은 “과거를 망각한 미래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일본 시민들 또한 이러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련된 연극”이라며 “앞으로도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투쟁해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양금덕 할머니 역을 맡은 무토 요코 씨는 “일본 시민 한 사람으로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준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가 부끄럽다”며 “이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연극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강기정 광주시장은 “연극 ‘봉선화’는 역사적 진실이 올바르게 기억되고 계승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일본 시민들의 양심과 광주정신이 온전히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들을 의논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연극 ‘봉선화’는 2003년 나고야에서 초연됐으며 2022년 나고야 두 번째 무대 이후 이번 광주 공연이 세 번째 무대다.

내년에는 도쿄 공연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