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에서]1류 아니라면 2류 만이라도 김종민 논설실장

2024년 04월 22일(월) 19:48

조금 늦은가 싶던 매화도, 벚꽃도 유독 아름다웠다. 울긋불긋 철쭉이 또 도심 곳곳을 물들였다. 봄은 늘 그렇다. 지친 마음에 잠시 쉼을 선물한다. 우리 정치도 환히 꽃필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고물가의 고통이 장기화되고 있다. 금(金)사과와 대파로 대표되는 과일과 채소류의 가격은 여전히 높다. 식품류까지 줄줄이 오르고 있다. 장보기가 무섭다. 4·10 국회의원 선거 뒤 공공요금 인상 압박도 커지고 있다. 유가와 환율도 출렁인다.

수드러들던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또 다른 전쟁이다.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 반도체 수출 반등에 따른 경기 회복의 불씨가 위태롭다. 백성을 귀히 여기고 섬기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일 잘하는 정부, 열심히 뛰는 국회에 대한 바람은 한결같다.

투표는 해야 했다.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부 독주 심판 대 의회 독점 심판의 대결이었다. 선거는 끝났다. 22대 총선이 남긴 시대적 과제는 국민의힘의 빨간색과 더불어민주당의 파란색으로 대비되는 동서 분할의 청산이다.

국가와 지방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 국민적 불안을 치유해야 한다. 서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펼쳐주길 바란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보다 깊다. 절제된 언행을 해야 한다. 품위 있는 말이 좋은 정치를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메시지를 통해 “더 낮은 자세와 더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했다. 영수회담부터 시작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마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 명령이다.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놔야 한다. 형식적이거나 일회성은 안 된다.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 경제·안보 위기에도 정치 양극화는 강화됐다. 포퓰리즘 식 돈풀기 공약에 앞다투고 적대감으로 상대를 무릎 꿇리고자 사생결단이었다.

선거운동 기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칠십 평생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 것 같다. 너무 못한다. 정말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도하다”고 말했다. 결국에 여당이 최악의 논쟁에서 졌다. 전체 300석에서 200석 가까운 야권의 압승이다. 윤 정권의 불통에 대한 회초리다.

민주당의 텃밭이라 할 만 했다. 진보와 보수로 지지세 결집이 가속되면서 광주와 전남은 일찌감치 판세가 결정됐다. 경선이 끝나면서 본선 승부는 무의미했고, 후보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도부 또한 무관심 그 자체였다.

즐길거리 하나 없던 축제였다. 소리만 요란했다. 호남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인구 감소의 영향이긴 하지만 유권자 수도 줄어 진보세력의 거점이면서도 지분이 쪼그라들었다. 변방으로 차츰 내몰리고 있다.

비례 투표에서 민주당이 아닌 조국혁신당을 선택한 것은 바로 심화된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호남 정치의 복원을 위한 전략적 한 수다. 선명성 있는 대여 공세를 위해 협력하는 한편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민주당은 잘하지 못했다. 기대에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소야대의 지형이 더욱 견고해졌다.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로 3당으로 뜬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이와 무관치 않다. 협치에 기반한 대의 정치의 실현을 위해 주도적 역할에 전력해야 하겠다. 승자 독식주의에 취하면 부메랑이 된다. 개혁 입법과 민생 안정에 올인해야 한다.

패자인 국민의힘은 겸손한 자세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한다.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도 공정, 상생의 원칙으로 쇄신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국면전환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무거운 책임감으로 새겨야 한다.

광주 지역구 의원은 8명, 전남은 10명이다.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지방 소멸 해법, 지역경제 활력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광주 군공항 이전, 전남 국립의대 신설은 가장 우선해 풀어야 할 현안이다.

민심은 단단히 성나 있다. 5월30일, 4년의 임기가 시작된다.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그 이전이라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인내심은 이미 바닥났다.

‘우리나라 정치는 4류’다. 고 이건희 삼성그릅 회장의 직설은 강산이 세 번 바뀔 세월이 지났어도 아직 진행형이다. 찬란하면서 잔인한 4월도 간다. 1류는 아니더라도 2류 정도는 돼야 한다. 국민들의 생각도 여기에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