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의대’ 설립 갈등, 순천 의견 경청해야 / 이정록
2024년 05월 20일(월) 20:48
이정록 전남대 지리학과 명예교수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어려운 문제를 참 쉽게 푼다고 생각했다. 전남도가 내놨던 ‘통합 의대(목포대와 순천대가 공동으로 의대 설립)’ 구상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었다. 물론 반신반의도 했다. 김영록 지사 일행이 벤치마킹을 위해 한겨울에 캐나다를 갔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구상이 순항하길 바랐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3월14일 전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순천대와 목포대 중 한 대학을 정해 정부에 추천할 것을 주문하면서 폐기됐다. 이후 전남도는 ‘공모에 의한 의대 설립 대학 추천’을 제시했다. 이런 전남도 정책에 순천이 반발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통행식으로 일을 추진한다는 느낌이다. 3선 지사와 향후 대권을 고려한 김영록 지사의 정치 일정 때문일까. 알 수 없다.

가칭 ‘전남 의대’를 어디에 설립하느냐는 선택사항이다. 전남 내 쇠락지역의 중심지인 목포에 둬도 된다. 이미 30여 년 전부터 의대 설립을 준비한 도시 아닌가. 전남 전체 인구의 46%가 거주하는 동부지역 중심도시이자 전남 제1도시 순천에 만들어도 된다. 목포도 좋고, 순천도 좋다. 어디든 상관없다. 의대 설립 도시 선정은 참과 거짓을 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최선과 차선을 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특히 전남도라는 공간적 차원에서 입지 선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역 내 균형발전이란 정책적 관점이나 동부와 서부 지역을 고려한 정치적 행위로 접근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특정 도시라는 지역적(regional) 차원에서 보면, 사정은 복잡해진다. 대학과 대학병원 유무는 해당 도시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도시에 대학이 있으면 좋은 점은 익히 알고 있다. 청년 인구가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로 집중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대학 유무는 지방 도시의 활력과 직결된다. 의대는 또 어떤가. 의대가 생기면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하는 대학병원이 그 도시에 만들어진다. 대학병원 운영경비는 그 도시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작금의 사회에서 최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병원 존재 여부는 지방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순천과 목포가 ‘전남 의대’에 목을 매는 이유다. 지역적 차원에서 보면 의대 입지 선정은 고난도 문제다. 그런데 전남도는 참으로 순진하게 접근했다.

왜 순천이 전남도 공모 방식에 반대할까. 이유는 많다. 나름의 논리도 탄탄하다. 핵심은 전남도가 서부 지역을 감쌀 것이라는 정서적 반동(反動)이다. 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했다. 이후 도지사 3명이 모두 서부권 출신이다. 혁신도시나 F1 경주장도 동부권이 아니었다. 고흥은 광주와 연결하는 고속도로 개설을 원한다. 그런데 광주-영암 아우토반을 또 서부권에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동부 지역에서는 전남도를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의대도 서부 지역으로 주려는 속셈 아닌가 하고 말이다. 지난 7일 노관규 순천시장이 발표한 공동 입장문을 보면 그런 행간을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과 대학병원이 현대 도시의 필수 인프라라는 점이다. 순천에게 순천대 지속은 당위다. 하지만 순천대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언제 간판을 내려야 할지, 전남대로 통합될지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의대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순천대가 독립적으로 존속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학병원까지 덤으로 생긴다.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중소도시 중에서 생태정원도시라는 도시 브랜드를 정립하며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순천에게 의대와 대학병원은 도시 지속성에 천군만마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 버클리대 엔리코 모레티 교수는 “대학병원은 도시 번영의 원인이 아니라 도시 번영의 결과”라고 했다. 전남 동부지역 중심지를 넘어 남해안권 허브를 지향하는 순천에게 대학병원은 꼭 있어야 한다. 대학병원은 순천의 품격을 웅변한다. 순천이 아우성을 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 지역에 ‘전남 의대’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목포와 순천 어디에 둬도 괜찮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도민이 수긍하는 입지를 정하는 일이다. 과정은 대단히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순천이 판을 뒤엎으려고 한다고? 정부는 왜 뒷짐을 지고 있느냐고? 모두 아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전남도가 불편부당하지 않다는 인식을 동부지역 주민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순천이 왜 전남도 입장에 반발하는지를 살펴보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자르는 것이 아니라 푸는 것이다. 전남도와 김영록 지사는 순천의 의견을 경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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